디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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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덕환 기자
  • 승인 2012.11.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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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덕환 기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시스템 중 하나는 바로 전력망이다. 수 백개의 발전소가 물려있고 이를 각 변전소와 지역으로 보내는 시스템은 인류가 창안해낸 구조 중 가장 복잡하고 세심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은 바로 이 전력망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간이 계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컴퓨터의 힘을 빌려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하기위해 제작된 것이다. EMS를 순수 자국 기술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력산업에서 선진국 반열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K-EMS의 기술개발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세계최고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전력품질을 설명할 순 없다. EMS의 활용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숙련된 인적자원’이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는 분명 전력거래소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블랙아웃’을 미연에 방지한 공로도 전력거래소에 있다. 순환정전을 통해 대규모 정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순발력있게 급전지시를 내린 직원들에게 공이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감에도 발전소의 공급과잉입찰, 전기요금, 한전과 거래소의 합병 등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정책적으로 다루는 세미나는 있었어도 당장 필요한 계통운영전문가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라고 묻는 세미나는 본적이 없다. 전력산업에서 계통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정치인사도 없는 것 같다. 

하물며 EMS의 부실운영이 9.15 정전사태를 불러왔다는 터무니없는 확대해석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EMS는 분명 최적화된 출력조절을 위해 나온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전력수급급전에 있어 만능이 프로그램은 아니다.

만약 EMS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묻는다면 이는 EMS의 어떤 기능은 맹신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급전운영을 맡았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 기술적인 부분보다 수많은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얘기를 한바 있다. EMS의 미활용이 9.15 정전사태를 유발했다는 얘기를 하려면 EMS를 운영하는 인력이 어떻게 키워지고 훈련되는지, 그들이 처한 환경이 어떠한지 고려해야함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야 EMS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도 나온다. EMS도 하나의 인간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디지로그라는 말이 최근 유행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인 디지로그는 디지털 시대를 건너 아날로그적 감성이 함께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첨단화된 이 사회에서도 전략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만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기술력과 시스템을 얼마나 활용했는지를 묻기전에 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활용하는 사람 한명 한명에게 우리가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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