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의 ‘빨리빨리’
대한민국 산업의 ‘빨리빨리’
  • 김병준 DNV KEMA 한국 지사장
  • 승인 2012.11.05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병준 DNV KEMA 한국 지사장
필자가 수 십 년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봐왔던 것은 동료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 중 하나가 바로 ‘빨리 빨리’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배우는 이 단어에 대해 그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기업문화 관점에서 보면 많은 절차를 무시하면서 초래할 수 있는 상당한 리스크를 내포한 업무 진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실 이 ‘빨리 빨리’식의 업무방식을 옹호하는 동시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이 조선 업계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제1위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점. 반도체와 전자 산업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점.

미국은 물론 유럽에까지 대한민국 브랜드의 자동차가 판매되고 그 성장세가 커지고 있다는 점. 대한민국의 산업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근로자들의 희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며 이 ‘빨리 빨리’ 정서가 적용되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대한민국 산업이 선진화되어 가면서 이 ‘빨리 빨리’ 문화를 개선해나가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풍력에너지 산업에서도 이 ‘빨리 빨리’ 문화를 배제시키는 경향이 있어 필자는 다소 걱정스럽다. 

풍력에너지 산업에서 후발주자인 대한민국은 조선업계에서 성장을 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업발전 초기 단계에서 선진 유럽 기술을 도입하고 다양한 도전을 해나가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

대규모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고 기술과 경험 면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국내 대형 조선?해양사들이 자본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풍력에너지 산업에 야심 차게 진출하였지만 이들 역시 초기 투자를 통해 선진 유럽 제조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발전기와 풍력 단지에 대한 개발 모두에 박차를 가하여 발전을 가속화하여야 한다. 풍력산업의 빠른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및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한 발전사들과 사기업을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의 긴밀한 협력이며 나아가 해외 및 다국적 프로젝트를 수행해 본 경험자들이 국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이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해외에서 이미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자들이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국내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에 접목시킨다면 프로젝트의 진행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의 풍력 발전 산업 발전에도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풍력 산업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전 분야에서 발전했고 그 만큼의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필자는 동의한다. 하지만 발전의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은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이 분야는 연구, 개발이 아닌 ‘경험’에 의한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한다.

즉, ‘리스크’를 예측하고 위험요소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 및 해결책을 세우는 것은 연구, 개발이 아닌 산업에서의 ‘경험’이 쌓여 형성된 데이터베이스에 기초한다.

따라서 현재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이끌어 나가고 있는 풍력에너지 산업에서 대한민국의 풍력 산업이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컨설팅, 기본 설계, 최근 기술 동향 등에 대한 경험과 정보 교환을 골자로 하는 협력체계를 다양한 분야의 해외 전문회사와 맺고 이들과 함께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국내 제조사 및 건설사의 자체 개발 역량을 확보해나가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국의 기술은 최대로 유출시키지 않고 해외 기술 및 경험은 최대한 받아들이는 방법을 통해 현재까지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이 발전해 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도약해나가고 있는 점을 볼 때, 풍력산업에도 보다 다각화 된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선진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우리만의 고유의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해외 문헌, 학술 자료, 규정 집을 가지고 국내 업체들로만 팀을 구성하여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이른바 ‘천천히’ 방법으로 풍력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MS-DOS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체 개발 J-DOS를 개발하여 경쟁하였던 80년대 후 반 일본 IT산업의 경우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풍력 산업도 중국과 인도가 뛰어들면서 ‘속도전’ 양상을 띠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빨리’ 습득하고 핵심을 공략하는 방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