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
등용문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10.0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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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황하 상류, 섬서성과 산서성 중간 부분에 용문이라고 불리는 협곡이 있다. 워낙 물살이 세차고 빨라 거슬러 올라가기가 힘들지만 있는 힘을 다해 일단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성공한다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비록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모여 들어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려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이 협곡에는 용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른바 용문에 오른다는 뜻의 등용문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란 의미로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성취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문대학 진학이나 고시 합격 등을 일컬어 등용문이라 하는 것 같다. 등용문을 오르느냐 오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몸값의 차이가 나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수많은 청춘들이 등용문 통과 하나만을 바라보고 귀한 청춘의 시간들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성공만 한다면 신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탄소배출권 또한 용문을 오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경주했다.

EC는 탄소배출권의 가격을 회복시키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수립했고 이를 야심차게 밀고 나갔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는 협곡의 물줄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거칠었다. 결국 EC와 두 손을 마주 잡고 여울을 거슬러 오르려던 탄소배출권은 거센 물결에 밀려 다시금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러자 “혹시 배출권가격이 올라가려나?”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보유 포지션을 유지하던 이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배출권 가격은 다시금 곤두박질 쳤다. 용이 될 수도 있었을 탄소배출권의 운명은 다시금 은색 비늘 사이로 스며난 붉은 핏빛 가득한 상처만 남게 됐다.

오는 9월 탄소배출권은 다시 한 번 등용문에 도전할 예정이다. 이번에 성공한다면 배출권은 몸값을 올릴 수가 있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한다면 온몸에 난 상처는 치명적 병원균에 감염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끝장이다. 그래서 EC도 올 가을 등용문 재도전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누구보다도 폴란드가 탄소배출권의 등용문 통과를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 실은 폴란드의 눈에 비친 EC의 배출권가격 활성화 정책, 일명 셋 어사이드 플랜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폴란드가 원하는 것은 단기 땜질식 처방이 아닌 탄소시장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 이러한 차원에서 폴란드는 셋 어사이드 플랜보다는 2015년 새로운 국제기후변화협상 타결을 성사시켜 그 바탕위에서 2020년 이후 더 적극적인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세워 탄소시장을 안정화시키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폴란드는 전 유럽 온실가스 배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송분야도 탄소시장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탄소배출권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배출권 가격을 회복시키는 정공법으로 지금의 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 폴란드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배출권 가격을 회복시켜 새로운 온실가스 저감기술과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싶은 조급한 EC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폴란드의 주장은 들으면 들을수록 답답하고 속 터지는 내용들 뿐이다.

젊은 시절 공자는 예를 배우기 위해 주나라를 찾아 노자를 만났다. 당시 공자보다 20세 가량이 많았던 노자는 공자와 오랜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질 무렵 송별사를 대신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공자에게 준다.

“총명하고 통찰력이 깊으면서도 죽음의 위험에 놓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남을 지나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고 또 박식하면서도 스스로의 몸을 위태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남의 잘못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삼가야만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탄소시장의 회복과 관련해 폴란드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그저 입바른 소리로 폄하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탄소시장 전문가들은 EU 내에서 폴란드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폴란드의 편이 영 없는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배출권 가격이 올라가기를 원하지 않는 측면에서 폴란드와 의견을 같이 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도 배출권 가격이 올라가봤자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기업운영 비용만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EC가 배출권가격을 무리하게 상승시키려는 것은 무너져가는 탄소시장의 붕괴를 막아 탄소시장이 활성화되는 데까지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많은 세수 수익을 거두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폴란드가 탄소시장의 무리하고 급격한 회복보다 기초체력 보완을 통한 장기적인 치료를 주장하는 것도 실은 석탄 사용비율이 다른 EU 회원국보다 높은 자국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탄소배출권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자국기업들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내는 알기가 어려우니 탄소시장의 회복을 둘러싸고 실체적 진실 대신 양자 간 힘겨루기 양상만 짙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해법은 진실함에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첨예한 이익 앞에서 그 누구도 진실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어쨌든 오는 가을, EC는 다시 한 번 탄소배출권의 등용문 통과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한편 폴란드를 위시한 배출권 가격의 상승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이 싸움에서는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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