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R도 신토불이
CER도 신토불이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09.16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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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필자는 20대 중반시절 무거운 배낭하나 불끈 짊어 매고 유럽 16개국을 유랑한 적이 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런던과 함께 안개에 휩싸인 고성 에든버러, 눈마저 시린 알프스 를 거쳐 팔등신의 미녀들이 푸른 잔디 위에서 반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프랑크프르트에서의 광경 들은 청년시절의 필자에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들을 선사해주었다.

보는 것마다 살아있는 감동으로 그 이상의 교과서가 없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20년 가량이 지난 후 필자는 여러 번 유럽을 찾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날 그때의 감동은 다시는 느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덤덤하기만 하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역시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어서 하는 게 좋다.

아무리 그래도 여행은 좋은 것이고 여행의 별미는 역시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조금 겪어본 지금의 필자는 사람이 무섭게 느껴지지만, 절은 시절의 필자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특히 여행 중에 사귄 친구들과 짧은 시간 내에 깊은 심리적 친밀감을 형성하면서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경기불황이 유럽을 강타한 지금 현지의 분위기는 가히 좋지 않다. 범죄가 기승이고 좀 도둑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필자도 덴마크에서 네덜란드로 장거리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노트북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 대화를 하며 장거리 여행의 무료함을 함께 달래던 중동의 이민자가 필자 일행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몰래 훔쳐서 달아난 것이다. 모든 일에서건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 요즘같이 흉흉한 시절 해외 여행은 모든 것을 신중히 살펴보아야 하고 특히, 아무리 친절해 보여도 함부로 믿고 마음을 터놓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이 발표되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최근 이에 대한 대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중이다. 시행령(안)에 의하면 국내 온실가스의 효과적 감축을 위해 1차 및 2차 계획기간 동안의 해외상쇄는 불인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필자는 얼마 전 탄소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2015년부터 시작될 한국의 배출권거래제에서 CER을 사용여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 중 한명은 필자에게 상기의 문장을 제시하며 해외상쇄라는 것은 CER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1차 및 2차 계획기간이 끝나는 2020년이 되어야만 비로소 CER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해왔다. 그와 비슷한 내용의 해외기사 때문이었는지 적지 않은 해외전문가들도 2020년까지 한국의 배출권거래제에서 CER은 무조건 통용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늘 바쁘고 정신없는 현업에 치여 시행령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보도자료의 내용만 단편적으로 읽어 본 일반인들은 얼마든지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기 시행령에서의 해외상쇄라는 것은 해외에서 발생한 CER을 의미하는 것이지 국내에서 발생한 CER은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필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2015년부터 한국의 배출권거래제에서 CER은 통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이는 다만 국내에서 진행된 CDM을 통해 발급된 CERs로 제한된다. 따라서, CER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업체라면 이를 2015년부터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기 때문에 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큰 틀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어떤 종류의 CER을 인정해 줄 것인지 등의 세부적인 사항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예를 들면 LULUCF나 2013년 중반부터 국제시장인 EU-ETS에서 사용이 금지되는 산업가스의 경우 과연 한국의 배출권거래제에서 통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들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만약, 한국이 CER 보유업체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이들 배출권들을 국내에서 통용시킬 경우 이는 글로벌 탄소시장에서 논란의 여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상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외부사업의 승인 및 인증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는 추후 고시로 정해질 예정이기 때문에 세부내역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나중에 뚜껑을 열어봐야만 분명해 질 것이다. 

현재 에너지관리공단, 대구시, 수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등의 공기관들도 수천톤에서 수백만 톤에 이르는 CER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CER을 팔아야 할지 아니면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바라보며 장기보유해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들 기관의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자신들은 조속히 판매를 하겠다고 한다.

2012년 이전에 발급된 CER의 유효기간은 2015년까지다. 그것도 2013년 4월이 넘어가면 유럽기업 등의 협조를 얻어야만 시장에서 유통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에 CER 보유기업의 협상력은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2년이 종료되면서 현재 보유중인 CER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어쨌든 빨리 처분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컨설팅사들도 있다.

또 다른 어떤 이들은 2012년 이전에 발급된 CER과 관련해서 아직 세부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국내 배출권거래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조속히 매도해 수익을 창출, 이를 적절히 활용하거나 재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생각이 더 복잡해진다. 과잉공급 상황에 놓인 탄소시장에서 CER의 가치는 나날이 하락하고 있는데 기업들로 하여금 이들을 계속 보유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는 빨리 무언가 확실한 결론이 도출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2015년 즈음,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 유통시킬 CER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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