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꽃
이별의 꽃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09.0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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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이 세상 어디선가 이별의 꽃은 피어나 우리를 향해 끝없이 꽃가루를 뿌리고
우리는 그 꽃가루를 마시며 산다.
가장 가까이 부는 바람결에서도 이별을 호흡하는 우리
(릴케, 이별의 꽃 중)

대형 금융업체들의 탄소시장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2년 전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스웨덴 배출권개발업체 트리코로나사를 인수했던 바클레이즈가 최근 이를 매각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비단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탄소배출권거래를 위해 자주 필자에게 연락을 해오던 한 글로벌 대형 금융사의 담당자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슬그머니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불과 2년 전만해도 CER의 가격이 13유로 대에서 형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고작 3유로 전후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무척이나 이익에 민감한 금융권으로서도 더 이상 탄소시장 투자에 매력을 느끼기가 힘든 것이 사실일 것이다.

나비효과! 이러한 일들은 파장에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관련 기업들의 대량 인력 해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이 분야의 지인들이 하나 둘씩 내몰리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필자의 마음도 무척이나 안타깝다.

얼마 전 필자는 친하게 지내던 한 글로벌 기업의 배출권트레이더로부터 슬픈 내용을 담고 있는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아래는 그 중 일부. 벌써 몇 번째 이런 종류의 메일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탄소시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탄소시장 밖에서 새로운 직장을 물색하게 되는데 이도 수월치는 않을 것이다.

“Personally I will be leaving ooo and pursue opportunities outside emissions market”(나는 oo업체를 떠나게 되었으며 배출권시장 밖에서 다른 직업을 찾게 될 것입니다)

호주에서는 2015년 도입 예정인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지지도에서 앞서고 있는 호주 노동당도 내년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길 경우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상태다.

또한, 호주국립대학이 자국 내 탄소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서도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호주의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만에 하나 호주에서의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난항을 겪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관련 인력들이 동 시장을 떠나게 될 것인가?

현재의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관건 중 하나는 배출권가격의 회복이다. 적정 수준의 배출권가격이 형성되면 다시금 탄소시장으로 자본이 모여들며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히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지금의 배출권 가격을 바닥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서인지, 최근 탄소배출권 구매를 위해 필자를 찾는 해외 바이어들의 발길이 조금 잦아지는 듯하다.

물론 이들은 낮은 가격에 배출권을 사서 단 0.1%의 마진이라도 남기고 단기간에 되파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경우도 있겠지만 배출권가격의 상승세를 예상하고 장기적 차원에서 구매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래는 배출권을 구매하겠다며 필자를 찾아온 한 영국 바이어와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이다. 배출권가격의 향방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그는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그는 2013년 중반부터 탄소배출권가격의 회복을 점치고 있었다.

판단의 근거는 내년부터 EU가 강력한 조치를 통해 경제회복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있고 이와 함께 ‘셋 어사이드 플랜’도 어떻게 해서든 진행될 것이며, 특히 내년 중반부터 산업가스의 사용이 금지되며 시중에 유통되는 CER 물량이 대폭 줄어들게 되므로 가격상승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호주나 한국 등으로부터의 CER의 수요 발생, 새로운 시장 메커니즘의 탄생 등도 장기적 가격상승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대량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필자측이 보유중인 현물 배출권뿐만이 아니라 선물계약까지 원했다.

만약 그의 예상대로 배출권가격이 움직여지기만 한다면 그는 대박을 터뜨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 떨어진다면?

4년 전이었던가 필자는 한 국내 공공기관을 대행해 배출권거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계약방식은 선도거래! 당시 CER 거래가격은 톤 당 15유로가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돈 많기로 소문난 알짜 상선기업 하나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리고 해외의 유명 전문기업이 참가한 경매에서 결국 거래경험이 많은 해외 전문업체가 낙찰되었다.

그 뒤로 4년여가 지난 지금 배출권 가격은 그때에 비해 1/5 수준으로 떨어졌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구매업체가 계약해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매도업체와 매수업체간의 법정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수업체가 유리하기 마련이다.

유럽의 업체들은 많은 거래경험을 통해 계약서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어느 정도 유럽이 주도하고 있고 대부분의 유럽 업체들은 배출권 거래시 자신들의 ERPA(Emission Reduction Purchase Agreement) 양식의 사용을 고집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풍부한 거래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탄소배출권가격 폭락 등 유사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신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리스크 헤지를 해 놓는 경우가 많다. 이는 거의 상례로 굳어진 듯하다.

상대적으로 경험이나 전문인력 그리고 탄소시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매도업체는 어이없게도 유럽 매수업체만 믿고 그저 하자는 대로 계약을 체결했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우가 있다. 알면서도 코를 베이기가 십상인 까닭에 유럽기업들과의 배출권거래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승자박일까? 신뢰를 잃은 탄소시장은 무너져가고 있고 이러한 탄소시장을 이끌어 오던 유럽의 전문 인력들은 시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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