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시장, 고객이 왕이다
VER시장, 고객이 왕이다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09.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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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집안을 말아먹을 철부지!’
바로 간송 전형필을 일컫는 말이다. 나라도 없던 그 암울했던 시절 서울 갑부집의 아들이었던 간송은 집과 땅을 팔아 고미술품을 사 모으기 시작한다. 기와집 한 채가 천원이던 그 시절 기와집 열채 값을 치르고 사온 골동품을 그 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손질을 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했다.

실은 당시 일반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이렇게 사서 모은 문화재들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신윤복의 풍속화, 훈민정음 원본, 국보 12점 등 값을 매길 수도 없는 귀한 보물들이었다. 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한국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평. 사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거래되고 있는 VER(자발적 탄소배출권)도 간송이 수집한 골동품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2004년 첫 거래를 시작해 2010년 문을 닫기 전까지 7년 동안 상당물량의 VER이 CCX(Chicago Climate Exchange)에서 거래됐다. 시카고 기후거래소로 불리는 CCX는 미국의 대표적인 탄소배출권 거래전문기관으로서 이산화탄소 등을 포함한 6개 온실가스를 거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돌연 거래를 중단했으며 이에 갈 곳을 잃은 VER은 장외시장에서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CCX에서의 거래대상 배출권인 CFI는 2008년 5월 톤당 750 센트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 한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으나 그 뒤 2010년에 이르면서 심지어 월별 거래량이 전무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9개월간 비슷한 상황을 유지하다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영업을 정지하는 최악의 사태에 이르게 된다. 당시 CFI의 거래가격은 5~10센트 수준까지 폭락하게 된다.

한 때 CCX는 포드나 듀폰, 모터롤라와 같은 기업에서부터 시카고나 오클랜드 등의 지방자치단체, 캘리포니아 대학이나 미네소타대학 등의 교육기관, 농업인연맹 등과 같은 단체 등 총 400개가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2010년 4월 CCX에 대한 인수를 발표한 시기를 기점으로 환란의 시기를 맞게 된다. 2010년 7월 절반이 넘는 직원이 해고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같은 해 10월에는 탄소배출권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폭탄발표를 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CCX가 문을 닫으면서 한 때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이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팽배해 지기도 했었지만 그 자리를 OTC시장이 대체하고 나서면서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실은 사우스폴 등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기업들은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골드 스탠다드(Gold Standard)나 VCS 등의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소매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좀 남아 있다. 필자는 수개월 전 스위스의 자발적 배출권 전문업체 홈페이지를 통해 수 만원 상당의 VER을 구매하기 위해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으나 어이없게도 결제가 되지 않았으니 다시 시도하라는 메시지만 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결제를 시도했는데 잠시 후 핸드폰으로 여러 번의 결제가 승인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다행히 동 업체에 지인이 있어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을 부탁한 덕분에 몇 일내에 환불처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만약에 아는 이가 없었더라면 더 긴 시간이 소요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인의 말로는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의 관건은 투명성과 상호신뢰이다.

하지만 국제기구와 글로벌 검인증기관들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 감시되고 있는 CDM시장마저도 각종 비리와 불법이 판을 치는 현상을 목도해 온 우리로서는 상대적으로 각종 자료나 정보로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자발적 시장이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이 될는지에 대한 우려감은 쉽게 내려놓기가 어렵다. 실은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의 발목이 잡혀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의 또 다른 단점으로는 부족한 유연성을 들 수 있다. 전편에서 기술하였듯이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의 구매자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 하려는 자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적합한 구매자가 늘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VER은 마치 골동품처럼 적정한 구매자를 잘 만나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좋은 가격에 거래될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 이러한 궁합이 맞는 구매자를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구매자들은 특정 유형의 프로젝트나 특징지역의 프로젝트를 정해 놓고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다 자기 취향이요 자신의 필요에 따른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이 한명 또는 수명의 소수참여자들에 의해 가격 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심지어는 유사한 유형의 자발적 배출권을 두고서도 다양한 가격이 책정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골동품처럼 사는 사람 맘인 것이다. 가격책정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지만 프로젝트의 유형이나 일자, 지역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더불어 협상력이나 마케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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