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정신
존버정신
  •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 승인 2012.08.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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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사)에코맘코리아 정책위원
주말에 서점에 가서 요즘 인기가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여직원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다소 생소한 책을 뽑아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독한 더위가 더욱 극성을 부리는 요즘 같은 여름 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몇 페이지 넘기다보니 아래의 내용들이 나왔다. 하버드 재학 중 출가해 승려이자 미국 대학교수라는 특별한 인생을 사는 저자는 어느 날 소설가 이외수씨에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격려할 수 있는 한 말씀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외수씨는 “존버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답했다. 존버정신? 저자는 존버정신이 무엇인지 알듯말듯 했다. 약간의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돌아온 이외수씨의 대답. “스님, 존버정신은 존나게 버티는 정신입니다”

지금의 탄소시장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필자도 폭락을 거듭 중인 탄소시장에 대한 면밀한 점검과 함께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또 이를 통해 요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탄소시장 종사자들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어 보고자 멀리 영국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 파피아(Aimie Parpia). 전직 CCC 애널리스트로서 블룸버그에서는 탄소시장 분석팀의 수장을 맡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시가총액기준 세계 3위 기업인 가즈프롬 영국지사에서 탄소시장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캠브리지대학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각각 전공한 그녀는 임페리얼컬리지런던에서 환경경제학을 전공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탄소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향후 1년간은 EU 경기불황으로 인한 수요축소가 심화되면서 배출권가격의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EC가 추진하고 있는 셋 어사이드 플랜의 부진도 그녀의 부정적인 전망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셋 어사이드가 추진될 경우에는 EUA와 CER 가격 모두 동반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전망이다.

그녀는 2014~2016년 즈음이 되면 EU경기도 현재의 불황에서 차츰 회복되어가고 새로운 온실가스 저감 제도들도 생겨나며 EU정부에서의 수요와 더불어 전반적 배출권수요가 한층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HFC나 N2O등의 산업가스 CDM 프로젝트로부터 발급되는 배출권 공급물량의 감소도 비록 단기적이지만 CER가격 상승에 한 몫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녀는 현재 CER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계속 보유해야 할지, 매도해야 할지를 고민 중인 기업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는 REPO(Repurchase Agreement)를 활용해 보라는 것이다. REPO라는 것은 원래는 환매 조건부 채권매매를 의미하며 탄소시장에서는 배출권을 현물로 매도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한 시점을 정하여 다시 배출권을 환매수하는 2개의 매매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역으로도 가능한데 즉, 현재 시점에서 현물 배출권을 매수하면서 장래 사전에 정한 기일에 배출권을 팔기로 하는 2개의 계약을 동시에 맺을 수도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REPO는 채권시장 및 파생금융상품시장에서 그 활용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매우 안전하고 효율적인 단기금융수단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2월 부러 증권거래소에서 REPO시장이 개장되어 있었다. 유럽 탄소배출권시장에서는 REPO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에이미 매니저는 강조했다.

REPO의 실전 적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대량의 배출권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 A가 현재와 같이 최저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이를 매도하고 난 후 가격이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염려가 있는 경우 REPO를 적절히 활용해 리스크 헤지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2012년 8월 30일에 톤당 3유로에 백만톤의 CER 매도거래를 맺으면서 동시에 2014년 8월 30일 100만톤 물량에 대한 매수거래를 톤 당 3.5유로에 맺는 것이다.

A기업으로서는 300만 유로를 2년간 보유하면서 이를 은행정기적금에다 넣어 놓고 이자를 받아 챙기든지, 또는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등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2년 후 더 높은 가격에 다시 CER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므로 매도 후의 가격상승 부담을 현저히 낮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제안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배출권을 분할 매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50만톤의 거래대상 CER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2012년 8월에 톤당 3유로에 50만 톤을 매도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2012년 9월에 3.2 유로에 또 다른 50만 톤을, 9월에는 잔여 물량을 2.8유로에 배도하는 것이다.

최초거래는 비록 2차 거래와 비교시 더 낮은 가격에 매도했지만 두 번째는 잘 팔았으므로 어느 정도 내부비판을 잠재울 수 있다. 더욱이 3차 거래와 비교하면 잘 판셈이 되는 것이다. 대량물량을 한 번에 다 거래해 버리고 난 후 가격이 올라가면 담당자는 심한 자타의 비판에 시달릴 수가 있다. 따라서 기업문화가 보수적인 경우라면 이러한 분할매도전략을 구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 에이미 매니저가 제시하는 배출권거래 전략이다.

혜민스님은 어렸을 땐 뷔페음식이 좋았지만 요즘은 잡곡밥이 좋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도 변하고 이에 따라 식성도 변하기 마련이다. 에이미 매니저가 전망한대로 EU경기가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고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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