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나의 일상
기후변화와 나의 일상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 승인 2012.07.09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지난 금요일밤 고단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얼마후 커다란 천둥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심한 바람 소리가 창문을 흔들어 댔다. ‘심상치 않다’는 기분,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한참을 그렇게 창문을 때리며 흔들어댔다. 책상위의 컴퓨터를 보았더니 인터넷이 끊어져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전화, 인터넷, TV, 휴대폰 모두 안 된다. 운동이나 하려고 가방을 들고 나왔다. 필자가 사는 워싱턴 D.C.에서 메릴랜드에 있는 헬스장에 가려면 포토막 강을 따라 난 카날로드로 간다. 아름드리 오래된 나무들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전쟁이 난 것 같았다. 군데군데 폭풍으로 쓰러진 오래된 나무들과 작은 나무 가지들이 길을 덮었다. 나무들을 피하며 헬스장까지 갈 수는 있었다. 헬스장에 도착해 보니 직원들이 문 앞에서 고객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정전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지인들의 안부가 걱정됐다. 휴대폰을 여니 전화가 터졌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곳도 전화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더 큰 일이 생각났다. 오후에 타야 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의 이륙이 가능한지가 걱정이 되었다. 

항공사에 전화를 하니 인근의 모든 공항의 비행기가 월요일까지 완전 이륙 중단이라는 것이다. 오늘 떠나려면 뉴욕시로 가란다. 일단 뉴욕 라구아디아에서 떠나는 샌프라시스코행 6시 마지막 비행기로 재발급 해놓고 자동차로 달렸다. D.C.를 도는 벨트웨이 495 고속도로는 교통 체증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겨우 뉴욕에 도착했지만 공항으로 들어가는 중심가의 교통체증.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다음날 첫 비행기로 예약을 재조정하고 공항 부근의 수퍼8 모텔에서 몇 시간의 잠을 청했다. 이것이 2012년 6월 30일, 나의 하루다.

미국의 수도를 여지없이 휩쓸고 간 폭풍은 ‘데레쵸’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스페인 말인데 ‘직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직선적인 강한 바람을 말하는 것으로 뜨거운 공기 위에서 형성되어 진행하면서 속도를 얻어가며 70~80마일까지로 진행한다. 그 속도와 파괴력은 1등급 허리케인과 맞먹는다. 이번의 데레쵸는 시카고 지역에서 형성되어 5개주를 거쳐 D.C.까지 왔다. 수백만 주민들의 전기가 끊어지고 1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워싱톤 D.C. 주지사들은 이미 재해지역 선포를 했다. 데레쵸가 형성되는 조건인 지속적인 고온이 그동안 연일 계속되었었다. 데레쵸가 있었던 날도 140년만의 기록적인 40℃였고 그 다음날은 온도가 더 높아 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곳의 재해는 지역적인 중요성 때문에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한 재해나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를 격고 있는 작은 마을에 대한 뉴스는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최근 마이클 콜리어라는 저널리스트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극지방 알래스카를 취재한 책에서 알래스카 주민의 생활과 동식물의 변화를 보고했다. 수수마레프 마을과 넷토크 마을은 해수면의 증가와 수천년 얼어있던 영구동토대가 녹아내려 마을 전체가 이주해야 한다. 워낙 가난한 마을이라 마을 전체의 이주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속수무책이다.

동물과 식물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유콘 강의 물의 온도가 지난 10년 동안 높아져  연어 속에 ‘이치노포노스 호페리(Ichyohonus hoferi)’ 기생충이 번성하면서 질병 발생률을 높였다. 빙하가 사라지면서 빙하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바다사자(walruses)와 북극곰이 얼마나 견딜지 알기 어렵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수영해야 하기 때문에 새끼들을 잘 먹일 수가 없다. 스프라우스 바크 비틀은 언제나 케나이 반도에 살아 왔지만 겨울에는 애벌레가 죽어서 숫자가 잘 조정이 되었다.  그러나 따뜻한 겨울 때문에 번식률이 늘어 숲을 파괴하고 있다.  

트레쵸로 인해 일그러져 버린 나의 일상 2012년 6월 30일. 그것은 내가 타는 자동차와 내가 버리는 쓰레기, 내가 사용하는 물과 전기, 그리고 내가 입는 화학섬유 옷들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는 한 지구온난화는 멈출 수가 없다. 이 일그러진 일상은 나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겪는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여전히 많은 쓰레기를 생산할 것이다. 정치인은 여전히 자신의 돈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석유산업을 지원할 것이고 미디어는 여전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아메리카 갓 탈렌트’ 같은 연예 뉴스를 인류의 운명에 관한 뉴스보다 더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우리는 이미 판단능력을 잃어버린, 물질만능주의에 중독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로 변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