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 승인 2012.07.0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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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작년 말 한 여직원이 회사를 퇴직했다. 비정규직 신분이었던 그녀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괴로워했고 신분의 불안정성에 민감해했다. 그녀는 꾸준히 비상을 준비했고 결국 다른 기업의 정규직에 합격했다. 환송회 날 그녀는 폭음을 했다. 수년간 맺혔던 한이 일시에 분출됐던 것이다.

진찰결과 병명은 술병, 처방에 따라 수면제가 섞인 치료약을 그녀의 혈관에 주사했다. 수면효과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치료제는 그녀의 몸 속에서 활발히 작용할 것이다. 일정시간이 지나 그녀가 깨어날 때쯤 그녀의 상태는 호전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EU와 EC 등은 중병에 걸린 탄소시장 치료를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EU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배출권 가격을 회복시키기 위해 EUA의 영구 제거방안을 모색 중이며 EC는 2013~2020년 기간 중 진행될 EUA 초기 경매물량 중 상당량을 2018~2019년 까지 인위적으로 판매 연기함으로써 배출권 수급균형을 달성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말하자면 일시적인 진통요법인 셈인데, 시간이 흘러 약효가 떨어지거나 내성이 생기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다.

전자의 경우 2020년 EU의 온실가스 저감계획을 포함한 관련 규정까지 개정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폴란드가 계속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편, 후자의 경우 필자가 EC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EUA 판매일정 연기계획은 7월 경 공식 제안되어 연내 모든 절차를 완료한 후 2013년부터 시행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물량(약 5억톤 예상)에 대한 한정적 판매 유보이기 때문에 이후 해당 물량에 대한 영구제거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가는 것처럼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자문을 역임하기도 했던 캠브리지 대학의 한 연구원은 EC의 일시적 판매유보 정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시행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시행되더라도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독일의 전기·천연가스 공급회사인 RWE의 담당자도 판매유보 정책은 시행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EC가 궁극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어떻게 해서든 배출권 판매일정 연기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향후 수년간 현재 7~8유로대에 머물러 있는 EUA의 가격을 최대 두 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CER 가격이다. 그 동안 CER과 EUA 가격은 스프레드를 좁혔다 넓혔다하며 동조현상을 보여 왔다. 이에 근거한 판매일정 연기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EUA 가격이 올라가게 되면 CER 가격도 덩달아 상승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데 실상은 적지 않은 탄소시장 전문가들이 반대 견해를 펴고 있다.

이들은 ‘셋 어사이드 플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EUA 가격은 올라가지만 CER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는 탈동조화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셋 어사이드 플랜의 효과는 EUA에만 한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EU-ETS에서 사용할 수 있는 CER의 양은 2008~2020년 중 최대 18억 톤 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간 중 발행된 CER의 양만  해도 이미 17억 톤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2013~2020년 중 매년 대략 3억 톤의 CER이 발급된다고 가정해 봐도 24억 톤 정도의 CER이 이에 더해지게 된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CER은 분명한 공급과잉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EU-ETS에서도 CER의 사용량을 늘릴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따라서 한동안 수급의 균형이 맞추어질 EUA 가격은 올라가더라도 과잉공급이 향후 더 심화될 CER 가격은 추가하락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남아공 스탠다드 뱅크측은 셋 어사이드 플랜이 진행되어 가면서 어쨌든 심리적으로 CER 가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그리스나 스페인 등의 문제가 추가로 터질 때마다 이로 인한 상승폭을 소멸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필자가 최근 탄소시장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해본 결과 열에 아홉은 셋 어사이드 플랜으로 인해 CER 가격이 덕을 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실은 이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조삼모사의 잔꾀가 아니던가! 치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배출권 영구제거방안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EU측의 다급한 입장이 이해는 되면서도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는 건지 궁금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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