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탄소시장의 현실
초라한 탄소시장의 현실
  •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 승인 2012.06.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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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배출권거래제를 포함해 작금의 탄소시장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 탄소시장 관련 행사가 얼마 전 독일에서 개최되었기에 필자도 시간을 쪼개어 다녀왔다.

금년 행사는 예년과 여러 면에서 사뭇 달랐다. 제일 특이했던 점은 우선 참가비의 할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선진국으로 간주되어 이백만원이 넘는 참가비를 내야만 했다. 올해는 개도국 요금을 적용해 주었다. 이로 인해 총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행사에 참가해 둘러보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본 행사에는 보통 3천 명 가량이 참석했었는데 올해에는 눈으로 딱 보기에도 참석자가 대폭 줄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공되는 오찬 또한 수프에 빵 정도 수준이었다. 이야말로 작금 탄소시장의 초라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구조조정을 당한 경우가 많아서인지 익숙한 얼굴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십 수개 업체를 만나 CER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니 그 중 절반정도는 의사가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CER가격의 추가하락을 예상하기 때문에 현재 체결되어 있는 ERPA에서 탈출전략을 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다행히 매도자와 체결한 계약서에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조항들이 몇 개씩은 담겨 있다고 한다. 수년 전만 해도 탄소배출권을 찾아 세계 각국에서 필자를 찾아오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이들의 반응에 필자도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EDF나 BP 등 몇몇 의무감축업체들은 자신들의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2020년까지는 계속 CER을 구매할 예정이라며 필자를 환영해 주어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배출권가격이 연이어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즈음 그 어느 기업도 청정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다. 사상 최저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의무감축 달성을 위해서는 차라리 배출권을 사서 쓰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투자를 해봤자 손해만 볼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청정기술개발유도 및 청정사업 활성화를 위한 배출권거래제도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배출권거래가 바닥을 치고 있는 주요 이유는 경기악화로 인해 탄소배출권의 주 수요층인 EU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데 따른 수요감소와 함께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배출권 할당의 실패, 여기에 더해 사상 최대양의 CER등의 발급이 더해져 시장에서 전체적으로 수요보다 공급물량이 많아지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배출권거래제도라고 하는 EU-ETS마저 운영 8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이토록 다양한 시행착오와 심각한 문제점들을 겪고 있는 것을 보니 배출권거래제라는 것이 결코 만만히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Learning by doing’, 즉, 각종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궁극적으로 완벽한 운영의 단계에까지 이르러 보겠다는 것이 EU-ETS의 운영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끝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러기에는 대내외에 미치는 악영향과 피해가 너무나 크고 심지어 지금은 EU-ETS가 향후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겠는가하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2020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끌고는 갈 것이라는 것인데 이왕 지속할 거라면 실패한 EU-ETS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통해 할당량조절 기능, CER 등의 공급과잉에 대한 대응력 제고, 외부경기악화에 대한 면역력 증강 등을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기후변화대응문제에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될지에 대해서까지 세부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독불장군신세를 면할 수 있다.

EU가 세계 기후변화시장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설득시킬 수 있는 명분과 함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일부 국가들은 EU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고 게다가 이들의 경기까지 바닥을 치고 있어 과거 종이호랑이라며 조롱했던 중국의 도움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신세에 놓인 것이 작금 EU의 경제상황이다. 이래서는 강력한 기후리더십을 펼치는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온실가스 감축비용을 더 낮추기 위해서 NAMA 등 새로운 온실가스 저감방안들을 활발히 논의 중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배출권시장이 추가로 조성될 경우 작금의 CDM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결국 교토의정서의 종료와 함께 CER의 생명도 순차적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탄소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요약해보면 현재의 탄소시장이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더욱 저렴하고, 더욱 많은 국가들이 동참하며 새로운 수요까지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탄소시장의 틀을 짜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주인이 반드시 EU라고는 할 수 없다. 호주, 뉴질랜드, 한국, 중국 등이 내부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배출권거래제를 출범시키려고 하는 배경에는 새로운 탄소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아 보겠다는 야심찬 의도도 담겨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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