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의 의미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의 의미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 승인 2012.05.2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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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지 않는 쓰레기로 지구를 병들게 말아야

▲ 김은영 워싱턴 주재기자
어린이날, 가족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던 기억은 언제나 즐겁다.
이럴 때 아이가 어른에게 주로 들었던 말은 밥 한 톨이라도 흘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밥 한 톨, 한 톨에 농부들의 피땀이 녹아 있으니 감사하며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뜰에 채소를 키우면서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흙과 햇빛과 물 그리고 농부의 수고가 만들어 주는 채소, 그 채소가 자라서 밥상에 오르기까지 농부는 겨울의 언 땅에서 봄을 기다리고, 봄의 땅을 갈무리하고 씨를 뿌린다. 싹이 트면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겉잎을 뜯어 주며 식물이 자라면서 제공해 주는 소중한 잎과 뿌리와 열매를 먹는다. 밥상에 올리는 상추 한 잎을 씻으며 고맙게 잘 자라서 가족들 몸의 영양소가 되어 주는 것을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된다.

우리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들고 다니며 마시고 버리는 플라스틱 병도 농부가 쌀 한 톨을 밥상에 올리기 위한 과정보다도 더 귀하게 우리 옆에 와 있다. 수 백만년 전 지구의 지각 변동으로 인해 땅속에 갇혔던 생명체들은 석유라는 형태로 땅 속의 기름이 되어 저장돼 있었다. 우리는 지구의 심층까지 천공을 해서 석유를 뽑아냈다. 석유가 정제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은 만들어 지고 수 천, 수 만 가지 크기, 두께, 색깔로 성형되고 운반되어 현대 문명의 거의 전부를 덮고 있다. 플라스틱 용기, 포장, 옷, 가구, 기계, 건축 재료 등 플라스틱이 없는 것이 거의 없다.
쌀의 화학 성분은 탄수화물인 탄소와 수소와 산소이다.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터도 마찬가지로 탄소와 수소와 산소이다. 그러나 이 두 물질의 다른 점은 화학 구조이고 그 결과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양극이다. 전자는 하느님이 만들었고 후자는 인간이 만들었다. 우리 몸속에 들어간 쌀은 미생물에 의해 탄소와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다시 생태계 속에 들어가 다른 생명을 만드는 자원이 된다. 그러나 플라스틱의 탄소, 산소, 수소는 분해되지 못하고 플라스틱 속에 갇혀서 영원히 지구상에 남는다. 그러므로 플라스틱 물병의 물을 마시는 행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쓰레기를 지구상에 계속 쌓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에너지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로 온난화하는 지구의 온실 속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우리가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백, 병, 스푼, 나이프, 포장지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버려진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구상에서 생산된 모든 쓰레기의 10%는 해양에 떠 있고 70%는 바다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2006년 UN 통계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플라스틱은 15%만 수거되고 나머지는 모두 매립지에 들어간다. 비영리단체 프로젝트 카아제이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만든 쓰레기의 70%는 바다에 가라앉고 30%만 바다에 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해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대양의 중심에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 쓰레기 대륙이 있음을 알고 있다. 태평양의 플라스틱 대륙을 처음 발견한 무어씨는 그 이후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는데, 2002년의 연구에서 그곳에서는 플랑크톤의 숫자보다 6배나 더 많은 플라스틱 조각이 있음을 보고했다. 이 플라스틱 조각들은 햇빛으로 분해될 뿐이지 썩어서 생태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가지고 있는 발암성 물질이나 공해 물질과 함께 플라스틱 조각들은 해양 동물의 소화기관 속으로 들어가서 해양 생태계를 병들게 한다. 무어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그 부근의 고기들의 3분의 1이 오염된 플라스틱 조각을 소화기관 속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5인치 짜리 물고기의 내장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84개나 나왔다고 한다.

또한 플라스틱 물병에 들어 있는 프탈레이트(phthalates)라는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속으로 녹아든다고 한다. 한 연구에서는 10주간 플라스틱 통에 저장된 물에서 이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FDA에서는 이 물질이 플라스틱 물병에 들어가는 것을 규제하려 하지만 플라스틱 병물산업의 강력한 로비는 이러한 규제를 방해하고 있다.
병물 산업체들은 성공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병물만이 깨끗한 물이라는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사실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물의 대부분은 수돗물이고 어떤 것은 수돗물보다 못하다. 수돗물의 처리는 검사와 규제가 따르지만 병에 담긴 물은 그렇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일반인들이 병물을 마시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는 한 깨끗한 물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예산을 정치인들이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하다. 플라스틱은 고생대의 생물들이 가지고 있던 탄소, 산소, 수소가 분해되어 생태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영원히 가두어 놓은 것이다. 물병 하나를 버리거나 일회용 용기를 쓰고 버리는 일은 이미 병든 지구에 또 하나의 영원히 썩지 않는 쓰레기를 더 하는 일이다. 인간은 지구를 향한 집단적 잔혹 행위를 천연덕스럽게 순수한 얼굴을 하고 매일매일 하고 있다. 그 행위란 다만 목을 축이고 빈 물병 하나를 버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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