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가 되고픈 EU
화타가 되고픈 EU
  •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 승인 2012.04.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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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철 탄소배출권 트레이더
최고의 실력을 갖춘 관우마저도 병가지상사인 죽고 다치는 일만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국경을 수비하던 중 안타깝게도 적장 방덕의 화살에 왼쪽 팔을 맞은 것이다. 방덕은 관우의 심장을 노렸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비껴 간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살촉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의원인 화타를 불러 수술을 부탁한다. 관우가 태연히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 화타는 관우의 팔을 절개 후 뼈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는 독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장시간의 치료 끝에 결국 화타는 관우의 상처를 말끔히 치료해 내고 만다. 무릇  남자라면 관우만한 배짱이 있어야 하고 프로라면 화타만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탄소시장도 관우처럼 병이 들었다. 그것도 옴짝달싹 못할 정도의 중병이다. 탄소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직원들은 구조조정 여파에 보따리를 싸느라 정신이 없다. 적자를 견디지 못한 작은 기업들은 살아 남기위해 큰 기업에 팔려나가기도 한다. 매년 개최되던 탄소시장의 대표적 행사인 ‘카본 마켓 인사이트(Carbon Market Insight)’도 올해부터는 중단되었다. 어떻게든 비용을 절감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CER 가격은 곤두박질을 거듭하다 현재 4유로 아래에서 지지선이 형성되어 있다. 이 정도 가격 수준에서는 아무도 탄소시장에 투자를 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존 투자자들마저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 투자금을 중도회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멋진 흑기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CDM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동안 각종 부정의혹에 시달리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맹비난을 받아왔다. 얼마 전 EC가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에 의뢰하여 CDM의 환경건전성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왔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CDM의 종말은 하루하루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명의 적장을 참수하였던 관우처럼 수년전만 해도 탄소시장은 지구온난화와 맞서가며 나름 용맹하게 싸웠다.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중국 등을 포함한 여러 개도국에서 이토록 효율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는 공급과잉과 재정위기라는 독화살에 맞아 언제 생명이 꺼질지 모르는 위기에 놓인 안타까운 신세, 가슴이 타들어가던 EU가 드디어 예리하게 날이 선 메스를 꺼내들었다.

EU의 계획은 시장에 공급되는 탄소배출권의 양을 인위적으로 줄여 수요 공급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EU의회 환경분과 내에서 동의가 이루어졌던 2011년도 말, 탄소배출권 시장이 크게 출렁하며 배출권 가격은 단숨에 30%가 뛰어올랐다. 당시 축소하기로 합의되었던 배출권의 수량은 14억 톤 수준. EU환경분과위는 이를 아예 못박아버리기 위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EU의회 내에서는 산업분과위가 딴지를  걸고 나왔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산업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량의 석탄사용으로 인해 많은 양의 탄소배출권 구매가 필요한 폴란드도 배출권 가격의 상승을 바라지 않기는 마찬가지. 폴란드 또한 EU내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가 될 리스크를 무릅쓰고 EU의회의 탄소시장 활성화에 지속적으로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실은, 2011년 폴란드 전력사들은 가장 오염이 심한 화석연료로 알려진 무연탄과 갈탄을 태워가며 약 138.3TWh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하였다. 늘어나고 있는 GDP와 함께 전력생산량도 2010년 대비 3.34TWh 증가했다. 한편, 폴란드의 전력 및 화력발전 부문이 2010년 할당받은 무상배출권의 양은 1억 5230만 톤으로서 약 500만 톤가량의 배출권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올해는 더 많은 양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로서는 더 강력히 탄소시장 활성화에 반대할수 밖에 없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2012년 2월 28일, EU 환경분과위원회는 2013~2020년 기간 중 일정량의 배출권 축소계획을 담고 있는 에너지효율화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감축하게 될 탄소배출권 물량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다시 한 번 흥분하기 시작했고 4유로 아래에서 빌빌거리던 CER가격은 단숨에 5유로를 뛰어넘었다.

본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서는 EU와 EC, 27개국 환경부 장관들 간 3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EU의회에서의 동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27개 회원국 간 이견으로 인해 향후 수차례 추가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았는지, UBS 은행, 70와트(70Watt), 노미스마(Nomisma) 등의 전문가들은 2012년 하반기 CER의 가격이 3유로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을 4월 초 내놓기도 했다.
현재 탄소시장의 모든 눈들이 지금 EU의회의 행보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탄소시장을 살려내느냐 못살려내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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