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 에너지환경정책센터(CEEP) 소장 / 델러웨어대 석좌교수
“에너지정책, 한국 전통음식에서 배워라”
존 번 에너지환경정책센터(CEEP) 소장 / 델러웨어대 석좌교수
“에너지정책, 한국 전통음식에서 배워라”
  • 남수정 기자
  • 승인 2012.04.09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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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 성공비결 ‘매력적 투자 아이템’
오바마, 40억불 건물에너지에 투자
그린에너지엑스포 ‘이상 아닌 현실’

▲ 존 번 에너지환경정책센터(CEEP) 소장 / 델러웨어대 석좌교수
- 제1회 그린에너지 엑스포와 제1회 세계 솔라시티 총회가 열린 2004년 이후 9년 만에 엑스코를 찾았다. 컨퍼런스 기조강연과 전시장을 둘러본 소감은.
▲ 한 마디로 2004년 당시 ‘이상(ideal)’에 지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이제 ‘현실(reality)’로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한국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과 정부 관계자들, 산업계가 그린에너지엑스포를 국제적인 행사로 키워낸 것이다.
제1회 세계 솔라시티 총회는 국제적인 행사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겨우 20여개 도시 대표들만이 모여 불과 20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대구선언’을 했다. 총회가 열린 대구 역시 그 당시엔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만 있었지만 이번에 와서 보니 제조업체도 많이 생겨났고, 대구 시민들이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큰 변화를 느꼈다.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한 성과인 것 같다. 

- 후쿠시마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장으로 있는 에너지환경정책센터(CEEP)와 재생에너지·환경재단(FREE) 역시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재생에너지 이용 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에너지문제에 특효약은 없다(no silver bullet). 에너지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이 담긴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기름 값을 낮추려고 무작정 생산을 늘릴 수는 없다.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유가 상승을 피하려면 기름, 가스, 태양광, 풍력, 원자력, 바이오 연료 등 이용 가능한 모든 미국의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2012 그린에너지 비즈니스 컨퍼런스 - 글로벌 태양광마켓 인사이트’ 기조강연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유틸리티(SEU)’ 모델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달라.
▲ 델러웨어의 CEEP가 지난 2008년 개발한 SEU는 기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은 높이고, 재생에너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혁신적인 공공-민간 파트너십으로 현재 미 델러웨어, 버몬트, 워싱턴DC에서 시행 중이다. 캘리포니아, 필라델피아, 메릴랜드와 서울, 중국 내 여러 도시에서도 도입을 위한 모델을 개발 중이다. SEU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파이낸싱으로, 채권(SEU Savings Bond)을 발행하고 있다. S&P가 신용등급 AA+를 줬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700억 달러 규모가 투자됐다.   

- 미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SEU 모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 지난해 6월 아시아개발은행(ADB) 본부가 있는 마닐라에서 열린 클린에너지를 위한 거버넌스·정책·법 제도 마련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클린에너지 서밋’에서 SEU 모델이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이 때 ADB는 SEU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SEU 모델은 에너지 효율 분야에서 에너지 엔드-유저 마켓과 소비자에게 맞는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역시 2008년부터 SEU 모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 박원순 서울시장을 처음 만났다.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일할 때 였는데 그 때만 해도 정치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SEU 모델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 이번 기조 강연 제목이 21세기 저탄소 세계 경제를 위한 그린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이다. SEU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것이다. 뉴욕은 에너지와 경제가 결합해 번영을 이룩해낸 상징적인 케이스다. 이 번영 모델이 계속되고 늘어나려면 기술, 경제, 환경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세기에는 전체 비용 중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용이 적었지만 이제는 에너지, 자원이 핵심이다. 화석연료는 상대적으로 더 비싸지고, 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도 더 지불해야 한다. 기술 역시 석유 시추나 운반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처럼 위험이 따른다.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린에너지 이코노믹스’는 여기서 출발한다.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은 적게 쓰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고, 재생에너지 가격이 화석연료 가격을 따라잡고 있다는 점이다. 미 전역에서 kWh당 에너지절약에 드는 비용이 전력가격(소매) 보다도 훨씬 싸다. 그리고 지열, 태양열은 전력가격(소매)보다 낮고, 박막과 결정질 태양전지도 5~10센트 더 비싸다. 고용창출 효과도 상당히 높다. 

- SEU 성공 비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 원론적으로 보면 생각의 차이다. 20세기의 생각과 21세기의 생각은 달라야 한다. 19세기 농업에서 20세기 산업으로 온 것처럼 에너지 역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화석연료에서 태양에너지로 패러다임이 변했다. 바탕이 된 것은 시민사회의 힘이다. 제일 먼저 시작한 델러웨어의 경우 비정부기구, 시민사회가 SEU 모델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냈으며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했다. 직접적으로는 SEU는 다양한 수익 모델이 가능하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투자자를 하나의 펀드로 모으고 기술을 개선해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이 투자비보다 많이 회수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이다. 기업(투자자)의 리스크를 줄이고, 이 시장이 굉장히 커질 것이란 확신을 주는 것은 매력적인 투자 요인이다. 에너지효율과 재생에너지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 오바마 대통령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투자정책을 펴고 있다.
▲ 지난해 12월 2일 백악관에 미국 내 에너지 전문가 20명을 초청해 의견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40억 달러를 공공·민간 빌딩의 에너지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SEU 모델을 소개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델러웨어 SEU와 파트너십을 통해 73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제공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1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주정부는 26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EU 모델을 다른 도시에 적용하면 최소한 5억 달러에 해당하는 경제적 편익을 얻을 수 있다.
‘더 좋은 빌딩을 위한 챌린지 파트너십(Better Buildings Challenge Partnership)’을 통해 워싱턴DC는 도심지역의 공공·민간빌딩(9천만 제곱피트)에 대해 202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20% 줄이는 다양한 액션플랜을 추진 중이다. 워싱턴DC는 SEU 모델을 벤치마킹해 3000개의 민간 상업용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장기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하면 침체된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바람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미국은 기후변화 문제에서는 리더십이 부족하다. 중앙정부의 정치적인 전략이 없다. 하지만 주 정부는 적극적인 의지로 많은 다양한 좋은 정책과 제도를 갖고 시행 중이다. 재생에너지 역시 중앙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36개의 강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가진 주 정부가 있다. 3분의 2가 넘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텍사스의 오스틴은 2015년까지 모든 탄소발자국을 측정해 ‘제로(0)’로 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중앙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중요하지 않다. 지방정부가 여건에 맞는 정책을 세워 강력하게 밀고 나가면 된다. 오바마의 재선과 상관없이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은 성장할 것이다. 다만 유럽, 중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부드럽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문제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긴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비유하자면 한국의 전통음식처럼 고기와 야채, 다양한 조리방법이 어우러진 균형잡힌 한 끼 식단처럼 지식, 효율, 안정성, 산업 등이 함께 가야한다. 이를 위해 전문성과 융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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