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탄소시장의 큰 손
보이지 않는 탄소시장의 큰 손
  • 신병철 탄소배출권 트레이더(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 승인 2012.03.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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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탄소놓고 강경노선 중국 입장지지국가 늘어

 

▲ 신병철 탄소배출권 트레이더(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하늘위엔 천당이 있고 하늘아래엔 항저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도시 항저우는 아름답다. 그 중 서호가 일품.‘석 잔 술에 만 가지 근심을 잊는다’는 소동파의 시구를 되뇌며 둘레 15km의 물길을 유유히 유람하노라면 세상시름도 어느덧 자욱한 안개에 묻혀버린다.
1990년도 중반부터 틈나는 대로 세계 이곳저곳을 유랑하던 필자는 중국의 매력에 푹 빠져 결국 그곳에서 학교와 직장생활까지 하게 된다. 많은 중국인들과 교류하고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은혜는 안 갚아도 원수는 반드시 갚고야 마는 DNA가 그네들 속에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도 체득하였다.

상하이에서 옌타이로 오는 장거리 심야버스. 고요하던 차안이 한 청년과 아가씨 간 고성으로 시끄러워진다. 실은 야음을 틈타 청년의 손이 부끄러운 짓을 벌인 것,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아침 일찍부터 터미널에서 대기하던 오빠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청년을 낚아채 마구 린치를 가했다. 수년 전 필자가 직접 목도한 직접적인 복수, 아직도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1600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중국의 발달한 도시, 직물기술, 서적, 높은 기술력, 경제력 등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도 중국인들이 유럽에 전수해 준 문명이다. 항주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로 평하였다.

잘 나가던 중국이 17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며 유럽열강들에 의해 거의 초토화된다. 자칭 세계의 중심이라 칭하며 유럽을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중국으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영리한 영국은 돈을 벌어들일 요량으로 중국전역에 아편을 유통시켰고, 이에 드넓은 중국대륙은 마약중독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결국 중국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게 된다. 이 틈을 노려 영국은 또 다시 침략을 감행, 중국 시장을 자신들에게 종속시킨다. 1860년에는 영국과 프랑스군이 베이징을 함락, 베이징 조약을 강요하는 등 중국의 주권까지도 농락한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의 신세, 그 장구한 역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수치스런 사건들이 이때 많이 발생했다.

마약에 혼미했지만 중국인들의 정신은 살아있었다. 와신상담의 고사를 곱씹으며 50년, 100년을 위공이산의 자세로 칼을 갈았다. 만만디의 마음가짐으로 150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12년 1월 1일부터 EU는 27개 회원국에 입출항하는 전 세계 항공사들에게 의무적으로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도록 조치했다. 항공사들에게 탄소배출 허용기준을 정해주고 그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초과분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서 상쇄하게끔 의무화한 것이다.
이는 항공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적으로 급증하자 EU가 환경을 지키자는 명분하에 내놓은 정책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12~2020년 기간 중 약 7억 톤 상당의 탄소배출권 수요가 발생, 침체된 탄소시장의 숨통도 트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상황에서 본 조치는 항공사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 본 조치가 시행된 이후 저가항공사 Airasia X는 유럽행 노선 두 개를 취소하였고 4월에는 파리 및 런던행 노선도 추가 중단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유가 등으로 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구매비용까지 부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형항공사들이야 탄소배출권 비용을 탑승객들에게 전가시켜 버리면 되지만, 저가를 차별화로 내세운 동 항공사의 경우 탄소배출권 구매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루프탄자, 에어프랑스 등은 적극 탄소배출권 구매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배출권 구매비용은 항공운임에 얹을 방침이라 결국 승객들의 주머니만 가벼워지게 생겼다.

돈이 들어가는 일에는 누구든 민감하다. EU항공정책이 발표되면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일부 국가들은 반대성명을 발표하며 온갖 대응방안 모색에 나섰다. EU와의 국제항공 또는 무역관련 회담의 금지라든지, 보복성 수수료 부과, 신규항로 개설요청 거부 등의 의견이 검토되기도 하였다.
미국도 강대국답게 이를 가지고 EU법원에 제소까지 하였지만, EU대법원 Juliane Kokott법무감은 EU 해당정책이 합법적이라는 사전의견을 냈다. 관례적으로 EU법원이 결심시에는 대법원의 의견을 따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국제환경단체들과 EU집행위원회는 Kokott법무감의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특히 EU집행위는 항공기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규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심기가 불편해진 미국은 의회차원을 넘어 행정부차원에서도 반격준비에 나섰다. 미 교통부의 Ray Lahood장관도 미국 의회가 매우 화가 나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서도 EU는 미 의회차원에서의 강경대응은 양자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무역긴장까지 심화시킬 수 있다며 맞불전략을 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전 미국 항공기에 대한 전면적 제도적용 열외를 강력히 주장하던 미국이 전략상 일단 한 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사태를 예의 주시하던 아메리칸항공, 유에스에어웨이그룹, 유나이티드항공, 델타항공, 유에스캐리어 등의 미국 항공사들이 슬쩍 항공요금 인상에 나섰다. 배출권 구입을 위한 준비단계 조치로서 결국 그 비용은 승객들 호주머니에서 충당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150년 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바 있는 중국의 대응강도는 차원부터가 달랐다. EU의 항공정책을 중국에 대한 자주권침해로 규정하며 우선 EU에 대해 가볍게 실력발휘를 했다. 중국 HNA(하이난공항그룹)산하의 홍콩항공이 프랑스와 진행 중이던 에어버스 10대의 구매협상을 돌연 중단해 버린 것이다. 거래규모만도 38억 달러 수준.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고작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강경한 입장을 펴자 EU측에서 비로서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EU항공협회의 Ulrich Schulte-Strathaus사무총장도 유럽 항공산업이 중국 등의 보복에 의해 역 포화를 맞을지도 모른다며 현 상황을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진단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EU가 중국에 얼른 협상단을 파견해 귀가 솔깃할만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환경단체의 지지를 등에 업은 EU는 항공부문 배출량이 1990년 대비 두 배 가량 증가하였고 얼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20년경에는 세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친환경적 명분을 내세워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자신들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EU는 중국의 입장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자신들이 종이호랑이라며 놀리던 중국이 이제 역으로 자신들을 쥐락펴락 하는 것을 보면서 EU는 지금 역사의 덧없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대응에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중국항공운송협회(CATA)는 회원사들에게 EU의 항공정책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방침을 내리며 EU의 관련 문서제출요구나 우선협상에도 절대 임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초강대국 미국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강력대응의 배경에는 돈 문제가 걸려있다. EU정책대로 중국 항공사들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려면 2012년 한해에만 1억 2300만 달러의 추가비용이 들며 이는 2020년이 되면 3배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하지만 그 이면에 150년 전의 설움을 극복하고 세계 초강대국의 위상과 패권을 되찾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야심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과거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던 유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금 그들은 은근한 쾌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돌고 돈다. 오늘의 패자도 피나는 노력을 거쳐 얼마든지 내일의 승자로 거듭날 수 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추구하는 것이다.
탄소시장에서 보이고 있는 중국의 강경노선은 지금으로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렵다. 환경단체들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글로벌 항공사와 상당수 국가들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비비가 엇갈리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는 훗날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국대륙이 재채기를 하면 전 세계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해야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날로 세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기후변화협상은 각국의 이해관계와 EU 재정위기 등에 발목이 잡혀 답보상태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소식이 지구촌 전역에서 들려오고 있는 현재의 추세로 가다간 10년, 20년 후 인류는 더 끔찍한 일들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발전과 환경을 한 번에 잡아야 하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이 쉽지는 않겠지만 중국은 이를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뜨거워진 지구에서 인류의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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