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 정책의 평가와 전망
스마트그리드 정책의 평가와 전망
  • 김창섭 가천대학교 교수
  • 승인 2012.02.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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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섭 가천대학교 교수
최근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성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고 이중 많은 경우가 성과에 대한 실망과 우려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지식경제부에서는 작년에 제정된 법에 근거하여 스마트그리드 기본계획을 수립중에 있다. 아마도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참여하였던 많은 사업자들은 기본계획의 내용에 무엇이 담겨있을 지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력IT사업부터 시작하여 제주실증단지에 이르기까지 약 5000억원에 이르는 큰 예산이 투입되었으므로 그 시행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바탕해 현명한 방향제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여기서 다시 한번 원점에서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지나온 과정을 복기해 보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전력분야에 정책적으로 IT를 도입하고자 하는 고민은 이미 2000년초에 시작되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이 가져올 시스템 운용상의 복잡성과 개방에 근거한 사업자와 비즈니스모델의 다양성을 효율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의 지능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바탕해 전력부문과 IT의 포괄적 융합은 당연시되었다.

2005년 전력IT종합대책에 근거하여 정부주도의 대규모 기술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당시의 시도는 중전기업체와 전기공학학계 주도로 기술주도형 사업으로서 이루어졌다. 뜨거운 열기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은 연구계 중심으로 추진되어 막상 종합대책과 달리 기술개발과 보급(한전의 구매)이 분리되는 문제점으로 인해 추진력의 한계를 보였다. 이로 인하여 참여 업계의 혁신의 속도가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결과 전력분야 주도의 혁신은 보다 개방적인 형태로 전개되는 정책적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현재의 제주실증단지에서의 파격적인 시도로 이어진 것이다.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정책의 엄호하에 우리나라의 거의 전 산업역량이 제주도 구좌읍이라는 좁은 지역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전력IT와 제주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흔히 말해지는 것처럼 전력IT는 실종되었고 제주의 실험는 한심한 수준인가. 스마트그리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불리한 여건을 감안하여 고안된 또 다른 절박한 시도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력IT의 경우에도 우리 역량과 경쟁력을 높이 판단하여 시작한 안이한 사업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내수에 머물러 신성장동력화가 비관시되던 중전기기 사업을 수출산업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서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를 IT기술을 접목하여 극복해 보자는 것이었고, 제주실증 역시 전력산업과 요금구조의 경직성하에서 무언가 혁신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장밋빛 청사진에 우리 스스로 도취되어 성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나 한전에 의존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각 이해당사자들은 공유된 꿈이 아닌 각자의 이해만을 단기간에 관철시키기 위한 이기적 접근도 분명히 존재했다. 또한 극히 보수적인 전력분야에 처음으로 발생한 버블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도 작동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하여 부정적인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계가 이 과정을 통하여 전력시스템 및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극히 폐쇄적이었던 전력부문 역시 융합과 개방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 간의 시행착오 경험은 향후 진정한 혁신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력산업구조의 경직성, 전력요금의 지속적인 왜곡, 아나로그 속성의 전력기술의 혁신의 어려움 등 다양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관련 산업간의 상호이해의 심화와 기술력의 이해를 높인 것도 사실이다.

그 강점들을 바탕으로 관련 산업간의 융합적 혁신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간의 투자지연은 역설적으로 대규모 투자의 여지를 의미하며 전력산업의 개방성은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통하여 일거에 확보가능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2012년의 데쓰밸리를 잘 견디어 낸다면 그리고 정부·한전·관련 기업 들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험난했던 여정의 끝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9·15정전은 역설적으로 “개방형 전력망 고도화”에 대한 필요성을 현실감있게 보여준 사건이었고 이는 스마트그리드의 필요성을 잘 제시한 것이다.
조만간 발표될 스마트그리드 기본계획에 대해 큰 기대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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