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답이다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답이다
  • 이윤애 기자
  • 승인 2012.01.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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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애 기자
‘12월 5일 조간부터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업공시관계로 엠바고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4일 저녁 광물공사로부터 도착한 보도자료는 첫줄에 빨간색으로 엠바고 요청이 적혀있었다.
공사는 해당 내용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외 희토류 광산개발에 나선다는 것으로, 보도가 기사화 될 시 관련 기업의 공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해당 내용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론티어레이어스사의 잔드콥스드리프트 희토류 프로젝트 지분 10%를 인수했으며, 삼성물산, 현대자동차 등 국내 5개 기업들과도 해당 사업의 공동참여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엠바고 요청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자료가 기사화 되면 해당 회사들의 주식이 오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이 회사의 주식을 사면 돈 좀 벌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요즘 ‘CNK 주가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고위 공직자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점차 외연이 확대되며 거대한 태풍으로 변할 조짐이다.    
처음 이 사건은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가 카메룬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4억2000캐럿이라고 부풀려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사실상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공무 수행 중 얻은 정보로 사익을 취했다는 점도 부각됐다. 보도자료 배포 이후 3000원이던 CNK 주가는 1만5000원으로 5배나 뛰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대사로부터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김 전 대사의 친동생들이 10억 상당을, 김 전 대사의 여비서는 대출을 받아서까지 5억원어치의 주식을 샀다는 점이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졌다. 전 국무총리실 자원협력과장과 광물자원공사 팀장 등도 주식을 매수, 관련 공무원 및 그들의 친인척들은 지난 2년간 조용히 ‘주식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곧 ‘CNK 주가조작’ 사건을 더욱 키우는 혐의들도 발견되고 있다. CNK가 카메룬으로 채굴권을 갖는 데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및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는 혐의다.
지난 26일 감사 결과를 발표 후 외교부와 광물공사는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주의 요구나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담당자 징계에서 그친다면 추후 제2의 CNK 사건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서두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론티어레이어스사의 잔드콥스드리프트 희토류 프로젝트 지분 인수와 같이 관련 공무원들에겐 유혹이 너무 많다.

결국 답은 사람이 아닌 제도, 시스템이다. 공무원, 정권 실세들의 개입 여부와 문제들을 성역 없이 밝혀내는 것은 감사원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검찰의 일이다. 외교부와 광물공사 등 관련 기관들은 해외 자원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제도적인 허점이 있는 지 살피고, 보완해야 한다.
제도적인 보완은 앞으로도 해외 자원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관련 기관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해외 자원 개발은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의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며, 막대한 돈이 투자된 탐사 프로젝트일지라도 수익성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기다리는 국민을 향해 두터운 신뢰를 줘야 한다. 이번과 같은 사건은 그 신뢰를 단숨에 깨트릴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다.
단순 해당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에서 나아가 제도적인 허점을 점검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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