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바둑이야기
역사속의 바둑이야기
  • 남부섭 발행인
  • 승인 2009.02.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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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전쟁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게임 가운데 바둑만큼 유구한 역사를 갖고 생명력 있게 이어져 내려온 것은 드물다고 하겠다.

요즈음 인기사극 천추태후에 나오는 강조는 거란족 40만이 쳐들어오자 대장군을 맡아 싸웠다. 당시 고려의 무기체계는 상당히 발전돼 있어 한꺼번에 수십발의 화살이 나가는, 요즈음 말로 하면 전차 같은 것이 있어 거란족은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강조는 진중에서 부하들과 함께 바둑을 즐겼다. 거란족의 동태보고가 있어도 가벼이 보고 바둑을 즐기다가 강조는 이 싸움에서 포로가 되고 마는 비운을 맞는다.

고려 말 최영 장군도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당시 고려는 부패한 사회로서 고관대작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집에 초청해 바둑을 두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최영 장군은 역사에서 배웠듯이 부친에게서 견금여석(見金如石)의 가르침을 받아 자기 집에 손님을 초청했는데 변변하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영 장군은 바둑을 즐기다가 오후 3~4시쯤 되어서야 점심상을 내어왔다. 요즈음의 비빔밥처럼 해서 말이다.

배가 고픈 사람들은 단숨에 밥그릇을 비웠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 시중에는 최영 장군집의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는 말이 회자됐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여러 차례 부하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바둑에 얽힌 실화는 전하는 것이 없다.

임란 때 유성용 선생의 바둑에 얽힌 야사가 있다.

유성용 선생은 휴가를 얻어 고향인 안동에 갔었다. 그 집안에 좀 덜떨어진 당숙이 한분 있었는데 기어이 조카 유성용 선생과 바둑 한 수 하기를 청했다. “아니 당숙도 바둑을 두시느냐”고 할 정도로 얕보던 유성용 선생은 바둑판의 한쪽 귀만 남기고 다 죽어 버렸다.

그러자 당숙이 오늘밤 자네 집에 과객이 들어 숙식을 청하거든 식사와 술을 많이 대접하고 난 후 내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저물어 가는데 과객이 하룻밤 유숙 할 것을 청해왔다.

술이 만취하도록 대접을 한 뒤 당숙집으로 보냈다.

당숙은 방으로 들어오는 만취한 손님을 다짜고짜 패대기치고 올라타서 칼로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이놈 바른대로 대라. 너 일본첩자지” 기겁한 만취 과객이 이실직고 하고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유성용을 죽이려고 왔던 첩자를 살려 보내면서 당숙은 이곳을 함부로 범하지 말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전국토가 왜구들에게 침탈당했지만 경북 북부지방은 왜구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데 이러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둑은 인생살이와 같다. 과하다 싶으면 패하게 된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더구나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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