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 박막 태양전지 생산
국내최초 박막 태양전지 ‘GETWATT’ 생산
국내최초 박막 태양전지 생산
국내최초 박막 태양전지 ‘GETWATT’ 생산
  • 남수정 기자
  • 승인 2008.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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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경력 카이스트 박막 태양전지 연구진 의기투합
한국철강 “효율 향상·양산화 동시에 이룬다”

2008년 7월 국내 최초 ‘박막 태양전지 생산시대’가 열린다. 50여년간 철강제품을 생산해 온 한국철강이 자체 박막 태양전지 브랜드인 ‘GETWATT 에너지사업부’를 신설한데 이어 지난 3월 공장을 완공했다. 연산 20MW 규모의 이 공장은 현재 모든 장비 셋업이 끝난 후 램프업(수율극대화) 과정에 있다.
박기석 한국철강 영업팀장은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대구에서 열리는 그린에너지엑스포에 참가해 시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양산시점은 7월이다.

박막 태양전지는 벌크형 결정질이 전체 태양광 모듈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원재료 부족난으로 제조원가가 상승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철강은 3년 전부터 대전의 에너지연구원에서 박막 태양전지 R&D 기술개발과 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특히 카이스트에서 10년 이상 이 분야를 연구해온 R&D 인력을 흡수해 성공적인 사업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공장이 완공됨에 따라 한국철강은 ‘GETWATT’ 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국내외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단기간에 시장에서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보통 6개월이 소요되는 필드테스트를 한 달로 압축시켜서 할 수 있는 장비로 테스트를 하고 있다. 또한 본격적으로 제품이 생산되는 대로 옥상 등 공장 부지에 설치해 결정질 제품과의 비교 운전데이터를 확보할 생각이다. 국제인증, 국내인증도 바로 신청할 예정이다.  

한국철강 태양광사업의 R&D를 총괄하고 있는 명승엽 박사는 “일본의 경우 태양광산업이 미래 40년을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하고 있다. 반도체를 한국에 뺏겼는데 박막 태양전지까지 뺏길 순 없다는 생각에 주요 R&D과제에서 한국사람은 제외시키고 있다”면서 “후발주자인 한국은 지금이 아니면 세계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왜 박막형 태양전지인가.
명승엽 박사는 “저렴한 가격이 박막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LCD TFT 공정과 유사해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 강국인 한국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박막 제품은 유리기판을 이용하는데다 실리콘 코팅 두께가 3㎛로 벌크형의 1/000 이하일 정도로 얇고 200℃ 저온에서 생산하므로 공정 비용이 낮다.
다만 효율이 6%대로 낮은 것이 단점이다. 명 박사는 “그동안 시장에서 주로 결정질 제품만 공급되다 보니 박막제품이 발전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명 박사는 “대부분의 발전효율은 25℃를 표준조건으로 하는데 여름 한낮이면 모듈 온도가 70~80℃까지 올라간다. 결정질은 -0.5%/K씩 떨어지는데 박막은 딱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요인들을 고려하면 발전용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한국철강 측의 설명이다. 명승엽 박사는 “적층 구조로 쌓아 올리면 발전효율을 최대 3배 가까이 올릴 수 있다”며 “효율개선, 양산화가 앞으로의 과제로, 1차 목표는 6.5% 효율 5세대 1.4㎡ 크기 싱글 접합 모듈 생산”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막 제품은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면 균일하게 원하는 무늬로 만들 수 있어 다양한 BIPV 모듈 제작 가능하다.
박기석 영업팀장은 “발전사업자들에게 환영받는 제품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  ‘국보급’ 박막 태양전지 전문가  한국철강 명승엽 박사
“박막 태양전지 시대가 오기만 기다렸다”
국내 비인기종목 설움에 ‘칼 갈며’ 연구에 매진
스위스·일본 세계최고 대학서 R&D 수행


한국철강의 박막 태양전지 사업의 R&D를 책임지고 있는 명승엽 팀장. 그는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정통 박막 태양전지 전문가’다. 어렸을 때 우주선 발사장면을 보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카이스트 학부, 대학원에서 박막 태양전지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과정은 한마디로 ‘배가 고팠다’.
“전자과다 보니 모든 국책과제는 반도체에 집중됐다. 대학원 시절 컴퓨터 한 대를 사기 힘들 정도로 연구비가 부족했다. 태양전지는 한 마디로 비인기 종목이었고, 찬밥이었다”
졸업을 했지만 어떤 기업도 박막 태양전지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었다. 같은 전공을 했던 선배들이 전혀 무관한 분야로 취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2008년 정도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기’ 하나로 버틴것 같다. 13년 연구한 걸 써먹어야지 다른 건 하기 억울했다. 박막의 세상이 올 때까지 한 마디로 칼을 갈았다” 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갈 데가 없어 칼을 갈며 오기로 버텼던 그 시간이 그를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박막 태양전지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2002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5년까지 3년 동안 카이스트에서 박사후 연구원과 연구교수로 있다가, 스위스 뉴샤텔(Neuchatel)&LEPF 대학의 IMT(Institute of Microtechnology)로 초청교수로 1년간 있게 됐다. 이듬해 1년은 동경 공대 연구원으로 있었다. 박막 태양전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다. 이후 모교의 교수가 되고 싶었던 상황에서 동경 공대에서도 교수 제의를 해왔다.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됐을 때 마침 유엔 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가 발표됐다.

“터질게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태양광 관련 기사를 보게 됐는데 한국이 가장 낙후돼있다고 나와 있었다. 무언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막필름만 13년을 공부했고, 연구실에서 ‘Tandem cell’ 효율 11%를 실현한 이후 더 이상은 할 게 없었다. 시장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2008년으로 예상했던 그 때가 1년 앞당겨져 있었다. 이후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국내최초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는 않을까?
“사실 한국철강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한국의 박막 태양전지 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할 수도 있고, 10년을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염려와 책임감이 있다. 한국철강이 잘 해줘서 후발주자들도 나와줘야 서로 견제하고, 독려하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다” 

박막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은 그는 마지막으로 정책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정부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부시정권을 보면 곡물가격만 잔뜩 올려놓고 태양광은 완전히 침체돼있다. 정부가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우라늄 캐는 것도 이산화탄소 배출사업이다. 기상학자들의 한반도와 일본 원전주변의 바닷물 온도가 높아 카트리나 같은 기상이변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원자력을 쓰는 것은  ‘실외기 없는 에어컨’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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