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별을 켜자
불을 끄고 별을 켜자
  • 한국에너지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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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긴 긴 때 아닌 가을장마 끝에 다시 무더위가 기승이다.
9월답지 않은 날씨이기는 지난 주 끝없는 게릴라성 폭우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무더위가 뒤늦게나마 벼를 익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일설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변화해가면서, 머지않아 수 천 년을 이어온 벼농사 짓기도 어려워질 것이라 한다.
수십 년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처럼 벼 결실이 안 되기는 처음이라는 어느 농부의 푸념 섞인 말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새로운 기후에 적응할 벼 품종을 개발하거나 특단의 농사법이 고안되지 않는 한, 이런 기후조건이 심화된다면 이제 더 이상 벼농사는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8월 22일은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제4회 에너지의 날 행사일이었다. 올해의 주제는 ‘불을 끄고 별을 켜다’였고, 슬로건은 ‘지구온난화에 브레이크를 걸자’
휘황한 조명등에 가려 사라져버린 도시의 별을, 5분간의 짧은 소등으로 잠깐이라도 되찾아 보자는 취지에서 정해진 주제였고, 시민들의 에너지절약 동참으로 지구온난화에 제동을 걸어보자는 뜻에서의 슬로건이었다.
여러 공공기관과 크고 작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로 57만여 곳 넘는 기관에서 5분간 소등이 이루어졌고, 삼성그룹 같은 데서는 전국의 모든 사업장을 소등하였다.

특히 에너지의 날 메인 행사가 진행된 서울 광장에서는 주변에 있는 80여개의 대형빌딩들이 참여해, 모처럼 불 꺼진 서울 밤하늘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력거래소의 집계에 의하면, 그 5분간의 불끄기로 15만kW의 전력부하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 에너지의 날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가장 더운 시간이자 피크전력 시간에는 에어컨 1시간 끄기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과 공공기관에서 동참하여 64만4000kW의 전력부하를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역시 전력거래소의 공식집계이다.
바로 하루 전날인 8월 21일이 올해 들어 4번째로 최대 전력사용량을 갱신한 날이었고, 그 다음날인 8월 22일에는 전날 못지않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었는데, 상승하던 전력사용량 갱신 행진이 8월 22일 에너지의 날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그 후 또 다른 갱신의 날은 오지 않았다는 점이 에너지의 날이 우리에게 갖는 특별한 의미라고 자평하고 싶다.

민간에서 시작된 에너지의 날이 이렇게 조금씩 성과를 거두어 가고 있지만, 지구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 듯하다.
지구의 역사를 하루로 압축하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분이라고 한다.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에서 얼마 전 발표한 기후변화 3차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를 구할 시간은 이제 8년밖에 안 남았다고도 한다.
매일매일을 에너지의 날처럼 보내야 하는 이유다.

하루에 5분 일찍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것. 빈방에 불을 끄는 것. 안 쓰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찾아 뽑아 버리는 것.
작은 실천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함께 한다면 생각이상으로 파급효과를 갖는 지구온난화 방지 시민행동인 것이다.
이제 천고마비의 9월이다. 오늘도 출근길 버스 안에선 에어컨을 펑펑 틀어댔다.
지하철도 그랬다고 동료가 얘기한다. 처서도 지난 지 오래고, 이제 에어컨은 왠만한 곳에선 꺼도 되지 않을까?
무심코 우리는 추위에 떨고 있고, 지구는 자꾸 더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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