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추운 걸 참아야 하는 大寒民國
여름에 추운 걸 참아야 하는 大寒民國
  • 한국에너지
  • 승인 2007.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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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직업이 뭐예요?”
“에너지절약운동하자고 모인 연대단체에서 일합니다.”
“그럼 부탁하나 하고 싶은데...”
“무슨 부탁?”
“특별한 건 아니구요. 나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여름만 되면 걱정이거든요. 버스나 지하철이 너무 추워 다니기 힘들어서요. 냉방온도 너무 낮은 거 꼭 시정해 주세요. 여름철만 되면, 전 스웨터를 여분으로 들고 나오죠. 혹시라도 깜빡 잊은 날이면, 그 날은 종일 고생이에요. 타는 곳마다, 가는 곳마다 너무 추워서죠.”
이웃 분이 내가 에너지시민연대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대뜸하신 부탁 말씀이었는데, 이런 비슷한 부탁을 또 다른 지인과 친척에게서도 들었다.

여름내 감기를 달고 사는 친구가 있다. 창문이 닫힌 초현대식 빌딩에서 펑펑 틀어대는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매일 일을 하는 직장여성이다. 그도 늘 스웨터를 들고 다닌다. 그가 감기를 달고 살기 때문인지, 그 집 어린 아들래미도 감기 그칠 날이 없다고 걱정이다.
에어컨디셔너. 에어컨이라 부르는 이 물건은 현대도시의 여름철 필수가전제품이 되었고, 주요 혼수목록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모기업이 생산한 에어컨 제품은, 전세계에서 판매율 1위 자리를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하니, 그야말로 IT의 강국이자 에어컨 생산의 모국(母國)에서, 그 시원함을 한껏 누리고 사는 우리들이다.
에너지의 남용과 이로 인한 온실가스로 지구가 온난화의 길에 접어들었고, 우리나라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했다는 터에, 우리 국민들은 지금 여름철 더위나 이상기후 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에어컨 사용은 더 늘고, 실내공공장소 어디에서나 대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시원스레 에어컨을 틀어주고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름철 추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7월 12일 서울시내 중심가 71곳의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실내냉방온도를 조사한 결과,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인 섭씨 26~28도를 지키는 곳은 21곳으로 30%에도 못 미쳤고, 나머지 50곳은 평균 섭씨 23.7도를 기록했다. 조사대상 가운데 대형마트와 백화점, 패스트푸드점의 온도가 가장 낮아 섭씨 22.6~22.9도에 달했고, 그 다음이 시내버스로 10개 버스사의 평균 온도는 23.6도였는데, 바깥온도와 섭씨 7도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실내외 온도차가 섭씨 5도 이상 날 경우, 2시간 이상 그런 환경에 노출될 때, 냉방병의 원인이 된다. 냉방병은 실내외의 급격한 온도 차이에 인체가 적응하지 못해 생겨나는 질환이다. 감기증상은 물론이요, 어지럼증이나 두통, 근육통, 소화불량과 피로 등이 냉방병에 수반되는 증상들이다.
에어컨 한대를 켜면, 선풍기 30대를 켜는 것과 맞먹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여름철 정전사태의 원인이 되고, 여분의 발전기를 한두 대 더 돌려야 하는 우리나라 피크전력의 주범도 에어컨이다. 가정전력요금이 누진제에 적용되어 폭등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에어컨이 원인이다.
폭염에 안 켤 수 없다면, 섭씨 26도~28도인 여름철 실내적정온도에 맞추었으면 한다. 우리 국민 모두 에어컨 온도 1도만 높여도 1년에 84만kW의 전력을 절약할 수 있고, 160억원에 달하는 액수라고 한다.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면서, 에너지소비 세계10위, 온실가스배출 세계10위에 올라 있는 우리나라인데, 여름철이면 스웨터를 입고 추위에 떨어야 할까? 
어제 저녁 폭우 쏟아지던 날, 버스 안에서 소름 돋은 팔을 부비며, 에어컨 좀 꺼주면 안되겠느냐는 중년 부인의 입을 화들짝 놀라며 틀어막던 그 옆자리의 젊은이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딸래미로 보이는 그녀의 반팔 밑에도 소름이 돋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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