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제는 은행가의 시대다
<칼럼> 이제는 은행가의 시대다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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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산업의 구조개편이 전력산업을 출발로 시작되었다. 이제 에너지부문에서도 공기업을 통한 정부의 계획과 지도보다는 민간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투자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누가 투자를 결정하는가? 지금부터는 정부가 투자결정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은행가가 결정하게 된다. 바야흐로 이제는 은행가의 시대다.
 사실은 은행가의 시대가 진작부터 왔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은행가의 역할을 대신한 셈이다. 과거 경제개발기에 우리 정부는 금융부문을 사실상 장악해서 기업의 재원조달이 관치금융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우리 은행의 경쟁력은 매우 열악한 수준에 있다.
 은행의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은행업은 돈을 꾸어주고 여기서 이자를 받아서 나오는 수익으로 이득을 남기는 사업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을 꾸어주면 원금과 이자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때문에 돈을 잘 갚을 수 있는 유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잘 판별하는 것이 은행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은행의 경쟁력은 결국 그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은행이 '될 기업'과 '안될 기업'을 잘 구분해주면 그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제시장에서 우수한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이 국제경쟁을 하기 위한 대표선수들을 선발하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과거 은행의 역할은 어떠했는가? 정부가 관치금융을 통하여 이 기업과 저 재벌에 돈을 꾸어주라고 하면 은행은 어쩔 수 없이 돈을 꾸어주게 되고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담보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정부는 일단 돈을 많이 꾸어가서 사업이 자꾸 불어나는 기업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사업성을 보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이야기도 나왔고 여기에 정경유착과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 은행이 투자계획과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능력은 외국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은행과 금융부문의 경쟁력은 전 부문으로 파급되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하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1997년의 금융 및 외환위기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부문은 정부와 공기업이 주도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사업의 수익성은 정부의 계획에 의해 보장된다. 공기업은 또한 망할 염려가 없다. 그래서 은행은 단지 출납창구의 역할만 잘 하면 된다. 그 결과 우리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을 독립적인 제3자가 면밀하게 점검하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에너지산업도 망할 수 있다. 은행도 발전소 짓는다고 하면 돈을 그냥 꾸어주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는 기업단위로 돈을 꾸어 주었다. 예를 들어 한전은 송전선 건설비, 발전소 건설비, 인건비 등을 조달하는데 지출의 내용과 관계없이 돈을 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을 보고 돈을 꾸어주는 것이 아니고 개별 사업별로 돈을 꾸어주게 된다. 수익성이 좋은 프로젝트라면 돈을 꾸어주게 되는 것이고 수익성이 좋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돈을 꾸어 주지 않는다. 그 결과 평균적인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훨씬 개선되기 마련이다. 과거에 기업단위의 대출에서는 이와 같이 프로젝트의 우열을 가릴 장치와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에너지설비에 대한 재원조달과정에 은행가가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 메릴 린치, 모건 스탠리, 도이치 뱅크, 살로먼 스미스 바니, 아이엔지 베어링 등의 유수한 세계적 투자은행들은 에너지설비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와 경제성 평가를 전제로 투자와 대출을 결정한다. 이러한 은행에 소속되어 있는 에너지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전세계 에너지산업의 판도를 좌우하는 일류 전문가들이다. 첨단의 수익성 산출모형과 위험 및 신용도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활용하여 에너지산업의 판도를 결정짓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은행에 과연 이러한 에너지 전문가가 얼마나 있는가? 투자계획과 프로젝트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분석능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이제는 은행들도 이러한 능력을 배양하고 보유할 때이다. 은행의 경쟁력은 바로 실물경제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정부의 계획과 규제에 의하여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에너지기업은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다. 은행가를 설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은 이러이러하며, 적절한 수익성의 근거는 무엇이고 하는 등의 정보가 은행가에게 들어가고 그는 적절한 분석을 통해 대출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주식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정부가 대주주가 아니므로 증자나 기업공개에 따른 공모주 매각의 경우에도 그 기업의 프로젝트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전제된다. 유수한 투자은행과 증권사의 에너지전문가들이 개별 프로젝트의 수익성과 위험에 대하여 면밀하게 검토하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 설비의 매각과 매입 그리고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파이낸싱이 이루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 기업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게 이루어져서 주가에 반영된다.
 정부와 공기업에 로비해 유리한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이 나타나도록 힘쓰는 시대는 지나갔다. 정당하게 시장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한 예비심사를 은행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제는 은행가의 시대다.

<조성봉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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