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죽음 계기로 에너지기본권 도입하라
여중생 죽음 계기로 에너지기본권 도입하라
  • 김경환 편집국장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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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얘기가 전해졌다.
경기도 광주시에 살던 15살 남 모양이 지난 10일 새벽 밀린 전기요금 88만원을 내지 못해 단전조치가 된 뒤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촛불이 옮겨 붙어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번 여중생 사망을 보면 기초생활도 안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가운데 발생한 비극이기에 소외계층에 대한 에너지기본권에 대한 법적 기반확립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새삼 느끼게 하고 있다.

전기요금을 체납해서 단전위기에 빠진 숫자는 매달 전국적으로 2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기료 체납 액수는 올해 들어서만 1월 319억, 3월 369억, 4월 340억 원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체납 가구 수도 약 100만 가구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전 가구도 지난 3월에만 1214가구로 역시 늘고 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북한에 전기 보낼 일만 생각하지 말고, 전기가 끊겨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이웃도 챙기라는 정부·여당을 보는 곱지않은 여론을 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챙겨야하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전기요금을 내는 한전 수용가의 10%정도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전력은 정부가 북한에 공급하는 전력 200만kW의 1/3에도 못미치는 60만kW수준이다. 여론이 고울 리가 없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중권의 SBS전망대’를 진행하는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씨는 최근 SBS 전망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휴전선을 넘어가는 송전이 정작 남한 땅에서 끊긴 곳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전기료 못 낸다고 전기를 끊는 것은 네티즌들의 표현대로 간접살인이 아닐까? 아니면 돈 없는 자, 동물처럼 살라고 능멸하는 짓이 아닐까?” 라며 정부가 전기 등의 생계수단을 경제적 차이로 차별한다며 정부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불행한 사고를 계기로 이제는 적당히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제도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특히 에너지기본권을 도입해야 한다.
에너지기본권은 전기·수돗물·가스 등 기초적인 에너지는 최소한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 누구나 향유해야 할 에너지 기본권으로 설정해 정부나 자치단체가 저소득층에 대해서도 그 이용을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지난 4월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시민ㆍ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마련해 발의한 에너지기본법에는 정부·지방자치단체·에너지 관련 기업·에너지 공급자가 지원 체계를 구성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에게 가스, 전기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국회 산자위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은 지난 13일 KBS1라디오 ‘시사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루 속히 에너지 기본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에너지 기본권은 빈곤에 처한 자와 그 가족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가스, 전기 등 에너지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권리”라며 “에너지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의 차이로 인한 에너지 소외를 받은 이들이 없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프랑스는 지난 1988년 ‘곤궁 상태로 특별한 곤란에 직면해 있는 이들은 국가로부터 가스, 수도, 전기, 전화 서비스를 받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에너지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제도를 위해 전력 회사, 가스 회사, 수도 공급 회사 등과 협정을 체결해 ‘에너지 연대 기금’을 조성해서 운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노동·환경단체로 구성된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 또 아름다운재단 등 시민·사회단체는 에너지 기본권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9월 정기국회 에너지기본법 제정 논의에 맞춰 에너지기본법안에 에너지기본권 보장을 명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별도의 에너지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는 산자부는 에너지 기본권 논의에 계속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산자부는 “에너지 기본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면서 “굳이 도입이 필요하다면 사회보장제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도입을 꺼리고 있다.

현재 산자부가 제출한 에너지기본법안에는 에너지 기본권과 관련된 내용이 별도로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헌법에는 분명히 ‘국민의 행복추구권’(제10조)이 명시돼 있고, 또 이 권리가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아야 한다’(제37조)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조승수의원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실려 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는 별도로 에너지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다차원적인 빈곤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특히 이번에 사망한 여중생 가정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데도 전기, 전화 등이 모두 사용 정지될 정도로 가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 지대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에너지빈곤층 지원은 국가 사회복지정책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필요한 조치로 공과금을 체납하더라도 전기나 가스공급을 끊지 않는 에너지수요관리정책차원의 지원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에너지안보를 국가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사회안전망 구축차원에서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소외계층에 대해 에너지 사용비용을 지원, 에너지빈곤을 벗어나게 하는 정책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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