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풍력발전소를 다녀와서
영덕 풍력발전소를 다녀와서
  • 한국에너지
  • 승인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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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호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영덕 풍력발전소에 풍차가 없었다.
눈 속의 영덕은 아름다웠습니다. 까닭은 눈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눈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건 난생 처음 이었습니다.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속을 헤집고 간 곳은 아래 기사화 된 영덕 풍력발전소.
가기로 계획한 것은 지난주 소주방에서지요. 지난 구정에 제가 고향(영덕)에 가서 풍력단지를 보았고 그 이야기를 소주방에서 한 거지요. 모두들 한 번 가서 소주도 한 잔하고 멋진 곳도 한 번 보고하는 식이었는데, 막상 일정을 잡고 술을 깨보니 괜한 약속을 했구나 하고 후회도 있었지요.


민만기 사무처장, 양장일 사무처장, 중앙일보 강찬수 기자, 권오상 상주대 교수, 박창호 포항환경연합 집행위원장, 이렇게 다섯분과 그리고 저, 어쨌든 6명이 지난 금요일 영덕을 향해 앞으로 전진.


민만기 사무처장과, 양장일 사무처장, 서울 볼일 보러 온 박창우 위원장, 그리고 저는 서울에서 4시에 출발했고 강찬수 기자는 양산에 볼일을 보고 포항에서 만나기로 했으며 서울 출발팀이 대구에서 권오상 교수를 픽업하기로 한 아주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요.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밤10. 마침내 내 고향 영덕(강구)에 도착하고야 말았지요.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찾은 곳은 한적한 횟집. 민만기 사무처장이 하도 문어, 문어 해서 미리 친구에게 문어 몇 마리 사두라고 부탁했는데 친구가 글쎄 4마리 그것도 4만원에 엄청 많이 사두어서 먹고 또 먹고.


그리고도 남아서 숙소에 가서 여섯 명이 뺑 둘러앉아 소주, 맥주 폭탄해서 죽어라 마셨구요. 아, 그런데 불행히도 초고추장을 가져가지 않아 문어는 또 남았어요. 초고추장 부재에 대한 민 처장의 아쉬운 한숨이 아직까지 제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숙소는 풍력발전소에서 3∼4km 떨어진 한적한 바닷가 팬션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에 들어가자 말자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탄주 몇 잔 돌고 나니깐 우와… 완전히 푹푹 빠질 정도가 되었더라구요.


나 참,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 봤어요. 몇 칠 후 알게된 일이지만 그 지역에 100년 만에 처음 내린 폭설이라고 하더라구요.


내일 아침 영덕풍력발전소 방문약속을 해 뒀던 터라 전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차로 산 위를 올라가야 하고, 체인도 없고, 그것도 가는 길이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인데…


다음날 아침 우리의 기우는 현실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발 디디면 거시기까지 차 오르는 눈, 방문 후 낚시도 한 판 하자고 약속까지 했었는디.


하지만 저의 그런 마음을 알까. 민만기 처장과 양처장은 눈온 바닷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가뜩이나 술에 쩔은 두 분의 눈이 더욱 낭만적으로 빛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전 가슴이 아팠고, 소시 적에 들은 소크라데스와 미녀의 장면이 생각 나더라구요.


하루는 소선생이 학업진도가 안나가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밤새 고민하고 나서 그날도 수업 전에 또 고민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 아테네 시내에서는 최고의 미녀(창녀)가 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근데 그때 제자 뭐시기가 위대한 소크라테스 선생님에게 뭐나게 뛰어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하는 말 “선생님 거시기… 거시기가… 그 그 그시기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난리 났당께로…”라고 최고의 정보를 전달했지요.


그 말을 듣자 소선생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음…하고 나서는 대문을 박차고서는 총알같이 뛰어나가면서 하시는 말씀. 가- 서- 보- 자. 미치겠당께로….(사실 전혀 관계없는 비유임. 히~)
눈 때문에 우리 차로는 도저히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영덕풍력발전소에 전화를 걸어 4륜구동, 체인 등을 호소하면서 픽업을 긴급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영덕풍력 측은 우리의 SOS를 받아들여 긴급히 차를 보냈는데, 윽 글씨 그 차가 오다가 낭떠러지에 내뒹굴었답니다.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고 나서도 영덕풍력 측은 새로운 4륜구동차를 보내주었고 마침내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던 영덕풍력발전소에 첫발의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4기가 가동 중이라던 영덕풍력발전소엔 그 어디에도 풍차는 없었습니다. 아니 풍차는 돌고 있었는데 엄청 쏟아지는 눈 때문에 1미터 앞을 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양장일 처장과, 민만기 처장도, 강찬수 기자도 죽고 싶었을 겁니다. 박창우 위원장은 오히려 풍차 옆에 귀를 딱 붙이고는 오히려 이게 낫다는 겁니다. 그게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근데 과연 딱 한대 그것도 풍차 옆에 딱 붙어야 보이는 풍차 기둥과 눈의 어울이 그게 진짜 아름다운 광경일까요? 고생고생 끝에 상경한 후 시인 박창우님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 6인의 이틀간의 고생은 작은 보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냐면 중앙일보에서 강찬수 기자의 기사를 1면 톱기사로 실었기 때문입니다.


1면이든 2면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만, 재생가능에너지 세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위대한 풍차의 위용을 지면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석양을 뒤로한 채 80m 날개가 공중을 유영하는 그 장관을 보고싶지 않으십니까. 


“제 고향 영덕에 오십시오. 그러면 맛있는 문어와 대게와 풍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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