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리뷰/ Soft energy paths
에너지리뷰/ Soft energy paths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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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3월28일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에 위치한 스리마일섬(Three Miles Island) 핵 발전소에서 냉각장치 파열로 일부 핵연료가 누출되는 사상 유례없는 사고가 발생, 카터 대통령은 핵 발전소 8km 이내의 23개 학교를 폐쇄하고 취학전 아동 및 임신부 전원을 8km 밖으로 대피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현실적으로는 인근의 오십만명의 사람들이 대피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원자 재양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원자로 근처에서 도망쳤고 그 외 수백만은 지방장관이 그들 모두에게 고향을 즉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거리에 나가면 무엇을 하기로 단단히 작정한, 두려움과 분노에 찬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스리마일 섬 사고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사회적 태도에 미친 영향에 있다.' 영국 원자에너지기구의 의장 존 힐 경은 1979년에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유럽 핵회의를 마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더 참혹한 핵 사고가 그 후에 전세계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스리마일섬 사고 이전에 이미 인류의 진로에 대한 모색이 있었는데 에너지로 인한 사고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도 사람들은 `지구의 벗(The Friends Of Earth)'의 대표였던 에모리 B. 로빈스(A.Robins)의 방향을 떠올렸다.
핵사고의 처참한 피해 말고도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악화는 그를 더욱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사실 1976년 10월에 미국의 해외전략지 `Foreign Affairs'에 에모리 B. 로빈스가 발표한 논문 `에너지전략, 새로운 길'은 에너지문제의 장래를 생각할 때 없어서는 안될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로빈스는 그의 논문 가운데서 선진국의 에너지정책을 `Hard energy paths'라고 하였는데, 편협하고 어려움이 많은 전략이라고 그는 설명하면서 대체하는 방법으로는 `Soft energy paths'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빈스가 주장한 에너지전략은 미국의 상원의원, 에너지부, 대통령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상원 공청회가 열림으로서 에너지논쟁을 일으켰고 미국의 에너지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오게 되었다.
로빈스는 선진국들이 취하고 있는 에너지정책은 ① 금후의 에너지수요는 증대하며 그것은 바람직하다. ② 현재 에너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석유는 가까운 장래에 한계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③ 따라서 수급의 차질이 염려됨으로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석탄 및 원자력 등의 대체에너지개발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Hard energy paths는 ① 수요예측의 불확실성, ② 대체에너지원 공급의 한계 ③ 전력확대에 의한 문제 발생 ④ 환경 및 사회경제상의 장해 ⑤ 대규모 집중형 기술에의 과도한 의존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로빈스는 지적했다.
여기에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로빈스는 Soft energy paths란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 또는 전략은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을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① 경제 성장과 에너지수요는 넓은 범위에서 분리할 수 있다. ② 에너지이용의 낭비 방지, 기기 효율의 향상 등 동등한 기능을 보다 적은 에너지로 실현하기 위한 경제성 있는 기존의 기술이 풍부하다. ③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이 현실적 실현 가능하다. 중소수력, 태양열, 태양광 발전, 풍력, 바이오매스, 유기폐기물 등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④ 화석연료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다음 시스템으로 연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석탄을 예로 들면, 전력과 증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열병합발전 지역난방 등이 그 모델 케이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로빈스의 Soft energy paths와 관련된 에너지 사회는 세계 여러곳에서 실험적으로 실현되었고 현재도 존재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저에너지소비 사회라던가 스웨덴, 일본 등의 태양화 사회의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이상향(Utopia)을 꿈꾸어 왔다. 인류 최대의 과제는 살기좋은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비롯되어 부단히 이상향이 추구되어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로빈스의 Soft energy paths는 현대적 의미의 이상향 추구는 아닐런지?

<이승재 칼럼니스트/200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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