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동물원과 사파리
에너지칼럼/ 동물원과 사파리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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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주도하고 있던 전력과 가스사업에서 경쟁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전력의 경우는 발전을, 가스는 도입부문을 시발로 경쟁이 도입되고 있다. 지역난방은 발전과 병행하여 진입할 수 있다. 이 부문은 공기업의 민영화가 경쟁과 병행하여 나타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민영화를 위한 사전작업으로서 경쟁이 도입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운영하였던 사업을 민영화하게 되면 심각한 사적 독점의 문제가 나타나게 되므로 사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산업구조를 경쟁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효과가 커서 경쟁이 효율적이지 못한 부문, 예를 들어 송전과 가스의 수송과 같은 부문은 당분간 공기업을 통해서 정부가 공급을 담당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도 반드시 공기업으로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정부가 적절히 규제하고 사용자가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구체화된다면 얼마든지 민영화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송전사업자인 National Grid Company와 가스수송회사인 British Gas도 민영화되었다. 원자력발전과 같이 안전성과 방사성폐기물의 처리문제가 핵심이슈인 경우에도 미국과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가 확고한 규제체제를 구축한다면 민영화와 경쟁도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알고 보면 에너지산업에서는 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예전부터 석탄산업에 진출하였던 몇몇 회사, 정유사 몇 회사, 가스회사, 도시가스 회사, 전력회사, 지역난방회사 등 결국은 다 그 얼굴이 그 얼굴 아닌가? 게다가 이중 어떤 회사는 석탄과 도시가스사업에서, 또 어떤 회사는 정유사업과 도시가스사업에서 겹치기 출연까지 하고 있다.
 에너지관련 공기업을 민영화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설 수 있는 사업자는 이렇게 뻔한데 경쟁은 도입해서 무엇 하자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똑같은 선수들이 경쟁을 해 봐야 그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하고 우리는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똑같은 선수들이라도 경쟁환경이 달라지게 되면 경쟁하는 모습이 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각 사업체의 효율성과 수익성 그리고 소비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프로야구가 생길 때 똑같은 선수들이 아마추어에서 뛰던 때하고 크게 달라진 기량과 경기모습을 보여주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에너지사업의 경쟁환경의 변화를 동물원과 사파리의 차이로 비유한다. 즉, 동물원에서는 사자 우리, 호랑이 우리, 코끼리 우리, 사슴 우리, 원숭이 우리 등을 구분하였는데 사파리는 이런 담을 다 헐고 서로의 영역구분을 없애고 자유롭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담을 헐고 진입규제를 제거하게 되면 정부와 사업자간의 관계가 전혀 새롭게 정립된다. 과거처럼 독점공기업으로 운영되는 경우 정부는 여러 정책적이고 공익적인 목표를 부과하는 한편 요금수준도 규제하였다. 이는 독점을 허용한데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정부로서도 필요한 정책을 강요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입제한이 풀리면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업체에 대하여 더 이상 정부는 가격규제를 실시하고 정책적 목표를 하달할 수 있는 명분과 권한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사업자로서도 정부의 가부장적인 지원과 배려를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따른 중요한 효과로서 연료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력산업의 경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발전소를 짓는데 한전과 산업자원부가 장기전력수급계획을 만들어서 이에 의하여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 수력, 양수 및 풍력 등을 사용하는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하였다.
 물론 장기전력수급계획을 만들면서 각 발전원별로 경제성과 투자비 등을 나름대로 고려하였지만, 경제성 이외에도 여러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배려와 에너지산업과는 관계없는 다른 정책적 목표도 개입되어서 연료간 경쟁의 효과가 적절하게 반영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연료의 경제성이 발전부문의 수익성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발전회사들이 민감한 연료가격의 차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서로 경쟁하는 사업체에 대하여 정부도 에너지산업과 무관한 정책적 목표를 쉽사리 강요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연료간 경쟁에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벙커C유와 발전용/산업용 LNG, LPG와 경유 등은 서로 대체성이 높은 연료로서 그 상대적 가격은 정부의 상대가격체계와 조세정책에 의하여 민감하게 좌우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더 이상 이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이제는 에너지사업자가 스스로 이러한 시장위험을 지혜롭게 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사파리가 된 에너지사업 환경에서 에너지업체는 정유시설, 도시가스 공급시설, 발전소 등 여러 에너지설비를 넘나들면서 사업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수익성을 보장하여서 정유시설에만 집중하였고 또 도시가스만 팔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위험관리를 하여야 한다. 벙커C유 가격이 오르면 자신의 정유시설이 생산하는 벙커C유 생산을 줄이고 대신 자신이 소유한 LNG 발전설비의 가동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편안히 앉아서 사육사가 가져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다가는 굶어 죽는다. 자리를 털고 무너진 담장의 흔적을 뛰어 넘어 경쟁의 초원으로 나가 보아야 한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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