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사이클이론과 석유산업
<에너지칼럼>사이클이론과 석유산업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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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오면서 영화관에서건 TV에서건 많은 영화를 보아왔다. 그러면서 간추려진 영화의 테마는 끔찍스런 얘기지만 섹스 아니면 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왜 그 수많은 영화가 에로티시즘 아니면 범죄를 다루고 있는가? 아마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섹스, 또는 에로티시즘 본능은 나 스스로 이해할만 하다고 생각했으나 범죄, 나아가 살인 본능에 대해선 의아함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필자는 공포감에서 오는 전율 때문에 닭 모가지도 못 비트는 주제이니 말이다.
 요점을 영화가 아니면 예술 전체가, 아니면 문화가 신물이 날 정도로 섹스, 에로티시즘, 나아가 연애사건 다루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으로 몰아가보면 어떨까?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비극은 교훈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극적인 사랑을 자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사랑은 인류 역사를 통해 되풀이 되는 cycle을 가지고 있다.
 개인사에서 사이클이다.
 사회, 국가, 또는 문명의 사이클은 어떤가?
 여기에서 토인비를 도용하기로 하자. 그가 쓴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이란 주제를 가지고 있다.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산(challenge) 역사 초기의 사람들 중에 이에 대항하려는(response) 소수의 사람들이 등장, 지배층을 이룬다. 그러나 이들의 창조적 응전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 가혹하고, 더 광범위하고, 더 다양한 도전들을 당해낼 수 없게 된다. 그들의 응전은 붕괴되었다. 그러나 소수 지배층은 강압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유지하려든다. 이런 와중에 내적 프롤레타리아(최하층계급)와 외적 프롤레타리아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내적 최하층 계급은 범 시민적 종교로, 외적 최하층 계급은 낯선 생활방식으로, 즉 새로운 영적 활력으로 도전한다. 그리해서 이전 문명은 붕괴되고 또 하나의 문명이 탄생한다. 역사는 이 사이클의 반복이다.
 그렇다면 인간사란 왜 사이클을 이룰까?
 惡言하자면 왜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반복할까? 도토리 키재기만한 고만고만한 인간사회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이 칼럼은 석유산업에 대한 칼럼이다. 석유산업도 역시 이 지상의 일이므로 이 사이클 이론을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상 여기서 WEFA(세계경제예측기구)의 부회장이며 전 MIT대 교수였던 마이클 린치(Michael Lynch)씨가 2000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에너지 세미나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를 발췌, 적용 예로 삼아보자.

 ■ 최근의 물결

 지난 5년간만해도 다수의 최대 규모 석유회사들이 사라지고 또 다른 다수의 회사들이 변형되므로써 세계 석유산업에 엄청난 변화가 있어왔다. 여기에서 세 가지 범주의 변화가 확인될 수 있다. 즉, 민영화(또는 개혁), 세계화, 그리고 합병이 그것이다. 후자는 최근에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전자의 두 변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다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1) 민영화
 1970년대에 국영석유회사들은 사회적 관심사(환경, 노동인구의 고급화 등)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는 등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존재라고 광범위한 계층에서 인식되었다. 석유수입국 정부는 국영석유회사를 보유하게 되면 석유수출국 국영석유회사와 보다 용이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국영석유회사가 없는 많은 국가들이 국영석유회사를 이 기간에 설립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론적인 변화와 증대된 경험의 바탕 위에 많은 사람들은 국영석유회사가 예상된 것 만큼 혜택을 주지 않으며, 국영석유회사가 초래하는 경제적 운영적 효율성 문제는 그러한 혜택을 상쇄시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적어도 정부 지도자들 중에는 이러한 신사고의 최초의 지지자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국영석유회사인 영국의 BP사는 최초로 민영화되었다. BNOC(영국석유회사) 또한 매각되었고, 얼마간의 지체상태가 경과한 후에 서구 국영석유회사의 대부분이 민영화되었고(일부는 부분적 민영화), 카나다의 PetroCanada, 아르헨티나의 YPF 등은 제3세계 민영화의 대표격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인도 석유산업이 민영화 대열에 참가하게 되었다. 중국석유공사 CNPC 조차도 공개적으로 교역하는 자회사를 하나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 석유자산의 대부분은 민영화되었다.
 2) 세계화(globalization)
 세계화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것은 한 법인체가 공통의 목표와 전략을 채택하는 경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세계경제가 보다 공개적이 되고, 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에 빠져들고, 그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채택토록 한 추세의 결과인 것이다.
 첨언하자면, 많은 정부가 사회복지와 같은 공공의 상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규제를 없애고, 시장개입을 줄이고, 또는 규제를 개선하여 시장의 공개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등으로 해서 강력해진 민간부문에 의해서만 경제력이 최상의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으로서 지난 수십년에 있어서 국가 시장의 증대되는 공개성은 이러한 추세를 무르익혀 왔다고 볼 수 있다.
 석유산업은 세계화라는 특별한 일격을 당했다. 석유회사들은 엄격히 측정된 수익성과 경제적 성공에 점차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며 시장점유율이라던가, 크기, 전략적 투자 등등의 다른 목표는 내동댕이 쳐버린 것이다. 미국 석유회사들이 1차적으로 이런 추세의 길을 이끌었는데 일부 이유는 그들 자신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전략적 투자나 사업다각화로써 큰 손해를 본 최초의 대상자들이었기 때문이다.
 3) 합병
 지난 3년 동안 최대의 거래만 계산해도 3000억 달러의 합병이 있었다.(이들의 대부분은 합병(merger)으로 취급되나 얼마 정도는 매수(acquisition)로 취급된다.) 700억 달러 이상의 엑슨(미국석유회사)과 모빌(미국석유회사)합병은 지금까지 최대의 것이다. 그리고 Repsol(미국의 석유회사)의 YPF매수는 Repsol을 세계 제7위 민간소유 원유생산자로 탄생시켜 놓았다. BP에 의한 Amoco와 Arco의 합병,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거대회사 출현과 두 스페인 회사가 새로운 석유 메이저를 탄생시킨 점 등은 하나의 변형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합병은 엑슨모빌을 최대의 민간보유 생산자이며 정제자로서의 위치로 끌어올렸고 BP가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위치로 만들어 놓았다.

 ■ 다음의 물결

 추세의 한 가지 요점은 그 추세들이 종종 반대의 추세를 산란하면서 항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일면 이것은 비교적 작은 회사들이 주요 회사들이 포기한 틈새 쪽으로 이동해 가는 것처럼 상황에 반응하는 경향을 단순히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 예상했던대로 행하지 않는 오래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현재 일어나고 있음은 수많은 예에서 어느 정도의 증거를 이미 찾을 수가 있다.
 공공부문 석유산업의 세계화의 경우에 있어서, 두 가지 반대적 운동이 돋보이고 있다.
 그 첫째는 Hugo Chavez에 의한 PDVSA(아르헨티나 국영석유회사)의 '재국유화'(renationalization)이다. 이 회사는 보다 강력한 정부통제하에 놓이게 되었고, 보다 더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협력적이 되었던 것이다. 언급할만한 또 다른 케이스는 최근에 상류부문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희롱을 한 바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이제 천연가스나 발전사업과 같은 부수사업에 대해서는 투자 제의를 제한하겠다고 분명히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이러한 반대 운동들은 항시 자유화에서 국가 통제로 향하는 정치적 양상 속의 하나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Lynch씨의 연설 줄거리에서 우리는 국유화 상태의 석유산업(국영석유회사의 존재이유 → 민영화, 자유화 → 재 국유화)의 사이클을 짚어낼 수가 있다.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의 정부들이 시장의 힘이란 완전하지 않으며, 가격이란 불안스런 존재이며, 민간회사들도 시행착오를 범할 수 없으며, 그 시행착오의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유화, 시장 공개, 시장의 힘이 강조되던 것이 바로 어제인데 이런 반대 인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필자는 이 또한 사이클이론으로 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사이클은 시행착오의 결과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개인사에서, 사회적 측면에서, 전 인류역사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태초에 황금 인간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이 천사같았다. 그 다음은 은 인간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 때가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태평연월이었다. 그 다음은 철 인간시대였다. 사람들은 사악하고 흉악해져 싸움을 즐겼다. 천국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이스 신화의 얘기다.
 지금이 바로 철 인간시대는 아닐까?
인간은 다시 황금 인간시대의 선한 종족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는 없을까? 그러면 이 사이클, 즉 시행착오의 반복은 없을 것이 아닌가?

<이승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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