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안면도편
② 안면도편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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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회 한 접시에 세상 시름을 떨친다

 바다에 서면 거짓이 없어진다. 바다에 서면 수평선 위를 가로지르는 올곧은 마음이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간신히 목만 내민 이름 모를 이름의 바위에 육신만 얹혀두고 오로지 마음만이 향하는 곳이 바로 바다 아닌가.
안면도다. 마치 밤고구마처럼 길쭉한 모양새를 갖춘 섬 아닌 섬. 남북 길이 30km, 동서길이 불과 5km. 늘씬한 오이 모양이기도 하다.
낮동안의 피로를 칠갑산 장곡사에 모두 던져버리고 온 일행은 내일 꼭두새벽부터 치를 거사(巨事)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몇몇 일행의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짹짹짹짹”참새소리에 눈을 뜬다. 새벽 다섯시. 어슴푸레하다. 문을 박차고 밖에 나갔다. 갈대숲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쉬이익∼. 앗, 풀숲에서 반짝이는 저것은 무엇일까? 어둠에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한 몇몇 별들이 밤새 풀밭에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게 아닌가. 말 그대로 별천지다. 안면도의 하늘은 이처럼 맑고 다채로웠다.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안면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영목항으로 향한다. 으스름이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올곧은 소나무가 획획 스쳐간다. 어느 한 그루도 곧지 않은 소나무가 없었다. 세상 사람의 마음이 저 소나무 같기만 하면 참 아름다운 세상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뿌우웅”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금새 영목항이 펼쳐졌다. 이른 새벽부터 영목항은 바다 낚시꾼들로 가득 메웠다.
드디어 거사가 시작됐다. 전투다. 물고기와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이다. 일렁이는 청파(靑波)따윈 두렵지 않았다. 오로지 큰 놈을 낚아 올리는 자가 오늘 전투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삼년산성 전투에서 고려의 유금필 장군이 백제의 애술 장군의 목을 칠 뻔한 간밤 대하드라마의 한 장면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녀석의 목이던, 아가미든 뱃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어어어”손바닥만한 우럭 한 마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뱃전에 튕긴다. 멋모르고 줄을 담갔던 일행 중 한 명이 어떨결에 첫 성과를 올렸다. “와와아아”좀전 것보다 더 큰 녀석이 올랐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뱃전에서 푸덕거리는 몸부림이 애처롭게 보이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일행도 있었다. “낚시바늘에 자신사진을 꿰어 미인계 쓴 게 실패한 게 아니냐”며 우스개 소리로 실적이 없는 일행을 위로하기도 했다.
어항에 우럭이 제법 그득하다. 성격이 급한 일행중 한 명은 빨리 회를 쳐 먹자고 채근한다. 하지만 그것은 선장의 권한이다. 일을 순차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희열과 비애가 교차했던 여섯시간. 그런대로 전투 성과가 좋았다. 우럭 80여마리. 이정도면 뱃삯을 충분히 빼고도 남을 정도다. 벌겋게 녹슨 선장의 칼이 거친 도마 위에서 춤을 춘다. 허연 살점으로 변한 우럭이 일행의 입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슬슬 녹아버린다.
만선이 되어 돌아온 우리 일행을 낯선 이들이 반긴다. 뭍에 오르자마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겁나게 많이 잡았네유”하며 저마다 소주병 하나씩 차고 모여든다.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를 건네면서 너나들이하며 회를 나눠먹는 모습이 정겨웠다. 서울에서 내려간 우리 일행이나 ‘바다의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곳 안면도 사람들은 우럭회라는 매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한통속이 되어 싱싱한 우럭회 한 접시로 세상 시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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