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중등부 최우수> 육각수 때밀이
<글짓기 중등부 최우수> 육각수 때밀이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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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파마머리, 후질근한 옷가지, 다 떨어져 나간 운동화.... 나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는 큰 길가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모든 생필품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못 본 척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차라리 없으면 없는데로 사는 것이 덜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빈집은 나에게 이제 익숙해 졌습니다. 엄마는 직장에 나가십니다. 어쩌면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일 일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보다도 더 옆에 가기 꺼려지는 사람... 가방끈이 짧아보이는 사람... 가장 낮은 계급을 가지고 엄마는 대중 목욕탕에서 일하는 때밀이입니다.
엄마의 직장은 우리집에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에 있습니다. 새벽 6시가 되면 엄마는 일터로 향합니다. 그래도 늘 나의 도시락은 잊지않고 챙겨주셨습니다. 나는 엄마없는 빈집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교복을 다려입고 학교로 갑니다. 친구들이 많아 외롭지 않은 학교가 나는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친한 아이들조차도 우리 엄마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 엄마가 일하는 여성이라는 것 밖에는...
"나 엄마가 수학과외 시켜준대... 그래서 오늘부터 선생님 오기로 했어."
"정말? 나도 엄마한테 과외 시켜달라고 해야 겠다. 정말 요즘 너무 불안하고 공부도 안돼. 과외선생 있으면 좀 도움이 되긴 될꺼야. 그치? 경남아 너는 과외 시작 안할 꺼야?"
"으...응. 엄마가 하라고 하긴 했는데, 내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
나는 엄마가 정말 밉습니다. 내가 고3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도 과외를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제껏 상위권을 유지했던 것은 모두 나의 노력이었습니다. 냉장고를 열고 모든 반찬을 꺼내어 상에 늘려놓았습니다. 물김치, 파김치, 배추김치, 그리고 김.. 며칠째 똑같은 저녁상입니다. 투덜거리며 밥을 먹는 도중 엄마가 문을 따고 들어왔습니다.
"경남이 왔구나, 밥 먹고 있니?"
"..."
대답이 없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 봅니다.
"오늘 시험 봤니? 못봤어?"
나는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공부 좀 못하면 어때? 괜찮아/"
"엄마! 지금 시험기간 아니야. 제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지마. 그리고 공부 좀 못하면 어떠냐고? 그런 말 하지마, 안 그래도 과외 시켜달란 말 안해. 내가 우리집 형편 뻔히 아는데 그런말 할까봐? 그럴까봐 공부 못해도 된다고 하는 거야?"
"경남아... 과외선생 필요하니?"
"어. 필요해 하지만 어쩌겠어?"
"그럼 해. 엄마가 일 열심히 하면 돼."
"싫어. 남의 묵은 때나 벗겨주는 대가로 번 돈으로 공부하고 싶지 않아."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방에서 나갔습니다.
늘 함께 다니는 친구 여럿이 모여 숙덕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보자 친구들이 어서 와 이야기좀 들으라며 손짓을 해댑니다.
"경남아 너 그 얘기 들었니?"
"무슨...?"
"육각수 목욕탕말야. 너희집 앞에 있는... 거기 때밀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줌마 어제 큰일 날 뻔했어."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육각수 목욕탕은 우리 엄마의 직장이며 그곳의 때밀이는 우리 엄마밖에 없습니다.
"왜...?"
"그 아줌마 맞았거든, 어떤 손님인가 봐, 때밀이 머리채를 쥐어잡고 흔들어 대는데 진짜 무섭더라. 근데 웃긴건 뭔지 아니? 그 때밀이가 속옷만 입은 채로 거리에서 맞았다는 거야. 사람들이 낄낄 거리면서 웃는데 웃을 일은 아닌 것 같고. 근데 나도 웃음 참느라 혼났다."
"왜? 왜 그 손님한테 맞았는데...?"
"그 손님이 탕 안에서 물이 넘치도록 계속 틀고 있었나봐. 그래서 때밀이가 물 좀 아껴쓰라고 했더니 그대로 주먹이 날라왔댄다..."
"그 때밀이도 웃긴다. 자기가 주인도 아니면서 뭐하러 참견하다가 맞았대냐?"
"몰라, 근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그 여자가 원래 좀 그렇데. 혼자 바른생활하는척 하는 사람 있잖아... 그래 봤자, 때밀이 주제에..."
"그래... 때밀이 혼자 물 아끼자고 외쳐봤자 뭐가 되겠냐? 욕이나 먹고 웃음거리나 되지..."
"호호호. 근데 그 때밀이 짤리진 않았나 모르겠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유난히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사실 물에 대한 엄마의 생각은 남달랐습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도 유난히 그릇을 달그락 거렸습니다. 자그마한 바가지에 물을 담고 설거지 거리에 한번에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물로 싱크대를 닦거나 화장실 바닥을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세수를 한 물로 발을 씩고 또 다시 그물로 마당을 청소했습니다. 나는 엄마의 이런 행동들이 참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엄마는 보기드믄 애국자일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틈에서 나는 빠져 나왔습니다. 나는 그녀가 우리 엄마라고, 우리엄마는 남의 때를 벗겨주는 성직자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집에서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집에 있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굳이 먼저 나에게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경남아. 얼른 씻고 나와, 밥 차려 놓을게"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내려 보내려던 물에 발을 씻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정말 오래간 만입니다.
우리집 파김치와 물김치는 정말 맛있습니다.

문 지 애
(진선여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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