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최우수> 어머님에게서 배운 에너지절약
<체험수기 최우수> 어머님에게서 배운 에너지절약
  • 한국에너지신문
  • 승인 200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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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회사로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아침, 나는 오랜만에 뜨거운 커피 한잔을 준비하여 창가에 선다. 지난해, 꽃봉오리가 막 터지기 시작하던 하얀 목련을 바라보며 어머님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던 그 자리에 오늘은 나 혼자서 잎사귀만 무성한 목련을 바라본다. 문득 '해마다 해마다 꽃은 같은데,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다르네'라고 인생의 변하기 쉬움과 늙음의 슬픔을 읊은 '유정지'의 시 한구절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밀물처럼 밀려온다.
작년 봄, 아침 커피잔을 비우시고 목욕탕에 다녀오겠다시며 총총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시던 어머님의 뒷모습. 그것이 내 눈에 각인된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목욕탕에서 정신을 놓으신 어머님은 이튿날 작별의 인사 한마디 없이 황망히 떠나시고 남겨진 자식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속에서 어머님을 보내야 했다. 어머님을 적막한 산자락에 모시고 집에 돌와온 날, 붉은 황토 흙이 범벅된 남편의 운동화를 베란다에 내다 놓으려 들고 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어머님은 어느새 모아 놓은 빨래비누 조각들을 꼭꼭 주물러 양파 자루에 담아서 비닐 끈으로 그 주둥이를 단단히 묶어 비누 곽에 얌전히 담아 놓으신 걸까? 행여 어머님 눈에 띄면 걱정 들을까봐 커다란 화분 뒤에 숨겨서 모아 놓았던 비누 조각들. 그날 아침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어머님은 베란다 수도꼭지 앞에서 한동안 무언가를 부시럭 거리시더니 모아 놓은 비누 조각들을 끄집어내 주무르고 또 주물러서 쓰기 편하도록 한 덩어리의 비누를 만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당신이 살아오신 세월의 어느 한 부분도 소홀 할 수 없었던 듯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토록 살뜰하게 자식 살림을 염려하신 어머님 마음이 애틋해 목까지 차오르는 회한에 가슴이 미어졌다.
신혼시절, 살림이 서툴러 실수 투성이였던 내게 어머님은 항상 완벽한 스승이셨다. 그러나 혼수로 장만해 온 세탁기 플러그를 뽑아 꽁꽁 묶어 놓은채 손빨래를 하시고, 가까운집 앞 시장을 지나 왕복 40분은 족히 되는 거리의 농산물 시장까지 나를 데리고 찬거리를 사러 가시고, 야채 씻은 물이나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시는 어머님 대문에 나는 늘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어머님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일체 말씀은 없으시면서 묵묵히 당신의 생활 하시는 모습을 며느리가 따라와 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빨래감만 나오면 수돗가로 나가시는 어머님 때문에 한동안 쪼그리고 앉아 시동생들의 많은 빨래감을 감당해 내는 일을 견디기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나 세탁기보다 손빨래가 옷감도 덜 상하고 때도 잘 빠지는데 전기세 들여가면서 빨래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감히 항거할 힘이 없었기에 말없이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해 두해 어머님과 마주보면 살아가면서 혼자 몸으로 아들 사형제 공부시키고 훌륭히 키워 내기까지는 어머님의 눈물겨운 절약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어머님의 모든 것을 존경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혼 3년 만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님은 힘들땐 세탁기를 쓰라고 권하기도 하시고 연탄 한 장을 아끼기 위해 꽉 틀어막았던 아궁이도 느슨하게 열어 주셨지만 정작 당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느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75원하는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여섯 정거장을 걸어 도매시장까지 가셔서 야채를 사 오시고, 콩나물은 손수 기르셨으며, 오래 된 옷은 수선해서 입으시고, 구멍 뚫린 양말은 기워서 신으셨다. 남편의 자수성가로 살림이 윤택해 진 뒤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자식들의 본보기가 되셨던 어머님이 우리곁을 떠나신지도 어느새 1년 2개월. 그러나 나는 아직도 꽉 잠궈놓은 주방의 온수쪽 중간밸브를 풀지 않고 있다.
유난히 추었던 지난 결울, 어머님도 계시지 않으니 이제는 밸브를 풀고 따뜻한 물을 쓰고 싶다는 유혹이 가끔씩 나를 흔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했고, 욕실의 냉, 온수 중간 밸브도 아직 풀지 않고 있다. 새집으로 이사오던 날, 어머님은 집안 모든 수돗물의 중간 밸브를 반쯤 잠궈 수돗물의 낭비를 막으셨다. 처음에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를 내는 수돗물이 그렇게 불편하고 갑갑해 어머님이 출타하시면 잠깐씩 밸브를 풀어 놓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생활이 되었고, 졸졸거리는 수돗물 소리를 통해 나는 가끔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우리집에서 세면기 위로 물이 흘러 넘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은 비누 조각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 쓰고 난 치약의 중간 부분을 잘라 끝까지 짜서 사용하는 생활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또, 어머님께서 생전에 아끼셨던 다듬이 돌은 지금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세탁후 탈수된 두꺼운 면바지나 셔츠를 가지런하게 접어서 깨끗한 타올에 싼 뒤 다듬이 돌 위에 올려놓고 꼭꼭 밟아 주면 잔주름이 말끔히 펴진다. 한꺼번에 여러개의 옷을 함께 접어서 밟을 수 있는데 색이 진한 옷이 있을 때는 중간에 비닐로 구분을 하고 10여분 올라가 골고루 밟은 다음 옷걸이에 모양을 잡아서 말란다.
이때 접혀졌던 부분에 분무기로 물을 약간만 뿌려서 건조시키면 다림질 한 것처럼 옷이 정갈하다. 특히 집안의 식탁보나 탁자보, 피아노 덮개 등 레이스 뜨기를 한 소품들은 보얗게 풀을 먹여 반 건조 됐을 때 이렇게 다듬이 돌 위에다 올려놓고 밟아 주면 풀이 골고루 먹어 오래도록 그대로 모양을 유지해 준다. 이 방법은 어머님에게서 배운 살림의 지혜 중에서 내가 가장 감탄한 전기절약의 표본이다. 또, 땀냄새 많이 나는 여름 속옷은 표백성분이 들어있는 세제에 골고루 주물러서 검정 비닐봉지에 싼다음 햇별 쨍쨍한 베란다 바깥쪽 화분대에 하루종일 놓았다가 저녁때 '슥슥' 비벼 빨면 삶은 것처럼 하얗고 뽀송뽀송 해지는 비법도 어머님에게서 배웠다.
언제나 나는 어머님이 곁에 계실 때처럼 두루마리 화장지를 지그시 눌러서 휴지 걸이에 걸고, 쓸데없는 반찬통이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건 아닌지 늘 냉장고 안을 살피고 또,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잡다한 물건들을 먼저 치운 다음 가장 빠른 시간동안 청소기를 사용하려 마음을 쓴다. 어머님은 생전에 집 한칸 물려주지 못하고 좋은 옷 한벌 사 입히지 못하며 자식들 키운 것을 내내 가슴 아파하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집보다 돈보다 더 귀중한 유산을 모든 자식들에게 물려 주셨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끼고 절약하면 그것이 모아져서 큰 열매가 된다는 것을,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것을 늘 생활 속에서 보여 주셨다. 고생스러운 살림에도 신세 한탄하거나 절망하기 보다 순응하고 감내하며 슬기롭게 사셨던 어머님, 참아내기 어려운 삶의 이력조차 꽃길을 산책하듯 향기롭게 이야기 할 줄 아셨던 어머님, 칠십평생 당신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장만하지 않으셨음에도 아름답게 자신을 가꿀 줄 아셨던 어머님, 풍족하다고 함부로 낭비하지 말고 물 한방울도 아껴 쓰라고 늘 당부하시던 나의 시어머님.
오늘도 나는 닳아서 납작해진 어머님의 칫솔을 끓는 물에 잠깐 소득해서 제자리에 다시 걸어 놓았다. 어머님의 그 보라색 칫솔은 가끔 느슨해지려는 내 생활에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기에 쉽게 팽개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집 에너지절약은 만점짜리라고 생각한다. 집안 어느곳을 둘러보아도 여전히 느껴지는 어머님의 손길이 내게로 이어져 살아 있기에 우리집에서 에너지절약은 일상적인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어머님의 그 손길을 간직하며 내 아이들에게 동화처럼 할머니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려 한다.
요즈음 남편은 집안의 전구를 교체할 때 절전형 전구를 구입해 바꿔주고 있다. 그동안은 절전형 전구값이 비싸기 때문에 거기서 얻어지는 절전효과가 가정경제에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 소홀히 지내왔었다. 그런데 같은 용량의 전구라도 절전형이 훨씬 밝은데다 전기료도 3분의 1정도라는 에너지 홍보용 책자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너나없이 칫솟는 물가에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야단들인 요즈음. 이럴 때 일수록 한가정 한가정이 생활 속의 작은 에너지절약에 힘쓴다면 국가 전체에 커다란 기여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부터, 오늘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에너지절약의 생활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에너지절약, 그것은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실천할 수 있는 생활속의 지혜다.

김 순 태
(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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