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렸던 디젤, 해상연료 배출물 규제로 기사회생
궁지 몰렸던 디젤, 해상연료 배출물 규제로 기사회생
  • 조강희 기자
  • 승인 2020.01.2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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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함유량 0.5%’ … IMO 2020
국내 정유사, 고도화 설비 갖추고 수익 개선 기대

 [한국에너지신문]국제해사기구(IMO)가 올해(2020) 1월 1일자로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0.5%로 대폭 강화한다. 이것이 바로 IMO2020 환경 규제다. 선박 연료는 전 세계의 석유 수요에 비해 오염물질 배출량이 매우 높고, 전 세계의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배출량 가운데 해운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훌쩍 뛰어넘는다. 북해와 발트해, 북미 지역 등의 해역에서는 황 함유량 상한선이 0.1%를 초과하면 안 되는 강화된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중국 일부 지역은 이미 0.5% 이하 기준을 적용하는 곳도 있다. 
선박 연료의 황 함량 규제는 계속해서 강화돼 왔다. 1997년 황 함량을 4.5% 이하로 제한하는 안이 채택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됐고, 2008년 ‘3.5% 이하’ 안이 채택돼 2010년부터 올해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 때 2020년 또는 2025년에 ‘0.5% 이하’ 안을 시행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공정 전경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공정 전경

정유업계에 찾아온 또 하나의 기회
새로운 황 함량 규제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해운업계는 ‘벙커C유’로 대표되는 고유황 연료유를 사용하면서 배출가스 정화시스템(스크러버)을 장착하거나, 해양경유(Marine Gas Oil)을 사용하거나 0.5% 미만의 초저유황 연료유를 사용할 수 있다. 연료를 완전히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할 수도 있다.  
스크러버는 설치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선박운행 제한 기간이 있다. LNG 추진선도 높은 비용과 LNG 저장 공간 문제 등이 있다. 저유황유를 사용하면 단지 연료비 상승분만 부담할 뿐 시설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해상 연료유 시장은 저유황유(LSFO)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IMO2020은 정유업계의 또 하나의 기회가 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등의 출현으로 육상 수송용 연료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고도 정제된 저유황 연료유를 해상선박용으로 사용한다면 정유업계는 감소한 수요량을 훌쩍 넘겨 공급할 여지가 생긴다. 또한 이제까지 별다른 규제 없이 사용하던 고유황유를 더 정제하면 정제를 더 거친 고순도 제품은 가격 상승 여력도 있다. 해운정보업체 시인텔리전스(Sea Intelligence)는 저유황유를 사용하면 해운업계가 더 지출해야 하는 연간 유류비는 130~150억 달러라는 추산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추가 지출의 상당 부분은 석유 관련 업계의 수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SK에너지 울산공장에 건설하고 있는 감압잔사유 탈황설비 현장
SK에너지 울산공장에 건설하고 있는 감압잔사유 탈황설비 현장

복잡해지는 연료유 수요 공급 곡선
고유황연료유(HSFO)는 1960년대 이래로 가장 널리 해양연료로 사용돼 왔다. 전 세계의 HSFO 수요는 2018년 기준 725만 b/d로 제품 전체 수요량인 9984만 b/d의 7.3%를 차지한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HSFO 수요는 2019년 350만 b/d에서 2020년 140만 b/d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는 HSFO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배출가스 정화시스템을 거의 장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해양경유(MGO) 수요는 90만 b/d에서 200만 b/d로 증가하고 초저유황연료유(VLSFO) 수요도 100만 b/d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MGO나 VLSFO는 정제과정을 더 거치게 되고, 초창기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여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국 에너지관리청은 선박연료 가격이 2020년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IMO는 새로운 규제를 지키지 않는 선박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들 선박이 2020년 기준으로 약 70만 b/d에 달한다. 단, 미준수 선박은 해가 지날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HSFO의 수요가 급감하면, 단기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 이는 발전 및 산업용 수요를 늘리게 되고, 선박용 수요 감소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 
HSFO의 수요를 가장 많이 대체하는 유종은 VLSFO다. 이는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쓰는 차량용 디젤이다. 차량용 디젤은 황 함량이 0.001%(10ppm) 이하로 규제된다. 해당 유종의 수요는 2024년 180만 b/d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전기차 등의 사용은 늘리고 경유차 규제를 강화하면서 줄어든 차량용 디젤 수요를 일정 부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해상 연료의 배출물질 규제가 같은 규제로 궁지에 몰린 육상 연료를 구해낸 셈이다.  
VLSFO가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명백하다. 배기가스 정화장치를 장착한 선박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규제 기준에 맞추면서도 비용 증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연료 가운데 가장 저렴한 대안을 골라야 한다. 이 때문에 LNG나 LPG의 경우 규제 적합 선박 연료로서, 특히 단기 해법은 아니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결국 유황성분을 0.5% 이하로 낮춘 저유황 연료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기존 HSFO와 VLSFO를 혼합하는 방법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양자의 배합비는 약 1(HSFO) 대 5(VLSFO) 정도로 결국 새 기준에 따른 선박용 연료유는 후자의 가격과 근접하게 수렴할 가능성이 커진다. 단기적으로 VLSFO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원유에서 VLSFO를 생산하는 수율(收率)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현재 육상 연료유, 항공유와 휘발유 등을 생산하는 데서 약 1% 정도를 경유에 양보하고, 전세계 장비의 가동률을 1% 정도 늘리면 달성할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영향받는 유종은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국내 정유사, 공급 준비 마치고 수익 개선 기대  
이번 IMO 2020 규제가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가장 많은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은 고도화설비를 구비한 정유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쉐브론이나 중국 시노펙 등은 일찌감치 새 기준에 따른 선박연료유 공급 채비를 마쳤다. 국내 정유사들도 잔사유 탈황 및 고도화설비를 건설하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고, 0.5% 혼합 연료유 수입, 판매 포트폴리오 조정, 배출저감 설비 장착 사업 등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에너지는 IMO 2020 대응을 위해 약 1조원을 투입해 친환경 저유황유 생산설비인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3월 상업생산에 들어간다. VRDS에서는 하루 평균 4만배럴의 저유황유(경유·LPG·나프타 등 포함)를 생산되며, VRDS가 준공되면 시황에 따라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1월부터 신기술을 적용한 초저유황선박유 ‘현대스타(HYUNDAISTAR)’를 판매하고 있다. 중질유 처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산공장의 고도화설비 일부에 신기술을 접목해 하루 최대 5만 배럴의 초저유황유를 생산하는 공정으로 변경했다. 
에쓰오일은 벙커C유를 저유황유로 고도화할 수 있는 잔사유고도화시설(RUC)·올레핀다운스트림시설(ODC)을 2018년 11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잔사유고도화시설(RUC)은 원유에서 가스와 휘발유 등을 추출하고 남은 잔사유를 다시 투입해 휘발유나 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시설이다. 또 잔사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중질유 탈황설비(RHDS)도 증설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일 27만4000배럴의 고유황 중질유를 정제할 수 있는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자체 공장 연료용으로 생산하던 저유황유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이 저유황유를 판매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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