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쳐 모여’식 조정은 조직 기능을 해친다
‘헤쳐 모여’식 조정은 조직 기능을 해친다
  • 한국에너지
  • 승인 2018.08.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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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공사와 광해공단 통합 추진에 부쳐

[한국에너지신문] 최근 석유·가스·광물 등 자원개발 공기업 세 군데의 구성원들이 다시 한번 이전 정부에서의 자원개발 부실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이들은 전임 사장 등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한편, 또다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구조조정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의 각오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지만, 이 정도로 끝나지 않고 기관 자체가 통합되는 곳이 있다. 바로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이다. 이들은 올해 내로 가칭 ‘광업공단법’이 통과되면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돼 출범할 예정이다.

정부에서는 새 기관의 출범을 올해 말 내지 내년 초까지 잡고 있는 것으로 보여, 현존 두 기관의 이름을 보는 것은 사실상 넉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와 소위 자원개발 혁신 TF라는 조직이 함께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광물공사의 부실을 지적했고,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다른 기관 후속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고 마치 ‘시범 케이스’처럼 광물공사와 광해공단을 통합하라는 방안만 남았다. 이에 대해 양측의 구성원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특히 정부는 현재의 부실에 대해서는 양 기관의 예산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자체적 자원개발을 자제시키고 지원기능만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여기에 광물자원개발과 광해복구기능을 한 기관에서 수행하게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실수다. 진작에 자체 자원개발을 자제하고, 지원 기능을 확충하고, 광물비축기능을 광물자원공사로 일원화하고, 구 광업진흥공사 시절에 약속했던 자본금 확충 목표를 70~80%만이라도 달성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자본 잠식에까지 이르는 사달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본 확충 약속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광물공사 구성원들은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서운함도 교차할 것이다. 더구나 두 기관의 태생이 다르다는 점은 본지에서 이미 여러 번 지적했다.

또 한 가지, 두 기관의 기능은 통합되어 시너지가 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 기관의 전문성을 키우는 동시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 두 기관의 통합은 에너지와 산업을 관장하는 산자부와 환경을 관장하는 환경부, 안전을 관장하는 행안부를 통합하자는 논리와 비슷하다. 안 될 일이고, 안 할 일이다.

다른 에너지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식으로 통합을 한 사례는 없다. 한수원과 한전기술, 원자력환경공단, 원안위는 함께 할 일이 많지만,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하는 일이 많다. 한전과 전기안전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원개발에 나섰던 다른 공기업도 그렇다.

가스공사는 가스안전공사, 가스기술공사와 업무가 다르고, 석유공사는 석유관리원과 업무가 다르다. 이들을 그룹별로 헤쳐 모여 하나로 합치라는 기능조정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긍정적 기능을 오히려 해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독 및 규제, 안전 기관과 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공기업 간에는 교차 인사도 가급적 회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업무상 범법행위 연루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상피(相避)’ 제도인 셈이다.

이러한 두 기관 통합을 시너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한다면 앞서 언급한 그룹들은 뭉뚱그려서 하나의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 ‘에너지자원공사’라는 초거대 공기업으로 운영하면 시너지 효과는 한층 커질 텐데, 수십 개나 되는 다른 이름의 공공기관이 있어야 하는가.

광물공사와 광해공단의 통합은 하나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광물공사가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광해공단은 이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모든 ‘해외자원개발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TF’라는 모자를 쓴 산자부가 집례자로서 행하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이는 TF의 역할 논란이 불거지는 데 대한 방어용인 동시에, 이전 정부 관계자와 더불어 아직도 산자부와 산하 기관 현직에 있는 관련자들의 책임 회피용 방책이 아니냐는 게 우리 시각이다. 같은 죄를 지은 사람이 제사장이랍시고 ‘집례’를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산자부는 편하게 앉아 이러한 잔재주를 마치 성과인 양, 또는 적폐 청산인 양, 또는 기관통합 시너지 창출 사례인 양 홍보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부실의 책임자를 샅샅이 찾고, 동시에 허공에 날린 국민 세금의 행방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해 직간접 관련자들이 숨긴 것을 토해내도록 하는 일에 한시바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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