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남북정상회담, 평화, 원자력
[전문가 칼럼] 남북정상회담, 평화, 원자력
  • 정환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8.05.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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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의 1953년 명연설을 추억하며
정환삼 책임연구원
정환삼 책임연구원

[한국에너지신문]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불현듯 1953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라는 제목의 연설이 떠올랐다. 

1945년 미국에 이어 1949년 구 소련, 1953년 영국이 핵 실험에 성공했다. 당대 열강이 핵 실험에 성공하자, 핵무기의 위력과 참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원자력 개발 경쟁을 무력 이용이 아닌 유용한 잠재력 이용으로 전환하자”고 연설했다. 

지구촌 모두가 주목한 가운데 발표된 판문점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가 포함됐다. 조만간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에서 원자력의 비평화적 이용의 잔재와 가능성을 일소(一消)하는 더욱 통 큰 변화로 발전되길 기대해 본다. 인류 평화를 향한 위대한 연설의 정신은 이제 한반도에서도 재현돼야 한다.

세계 최초의 핵 무기 개발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시작됐다. 나치독일의 핵분열 실험 성공을 우려한 아인슈타인과 질라르드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개발의 시급함을 탄원했다. 1942년 12월 시카고 파일에서 원자핵 인공연쇄반응이, 1945년 7월 최초의 핵 폭발 실험인 작전명 ‘트리니티(Trinity)’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핵폭탄은 인류사에 유일하게 일본의 두 도시에 사용되었는데, 그 위력은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상상 못할 수준이었다. 그 참상은 1946년 8월 작가 존 허시가 ‘더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히로시마’란 르포기사로 실었다. 이를 본 개발자들은 심각한 심리적 공황을 겪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인류는 아직 핵을 이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탄식했고, 죽기 직전까지도 핵폭탄 개발 탄원서에 서명했던 것을 후회했다. 미국 핵무기 개발의 핵심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도 “나는 죽음의 신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고 자책했다. 

1950년대 후반 남북한은 연구용 원자로를 각각 도입했다. 남북 모두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아간 길은 완전히 다르다. 남쪽은 세계에서 각각 6위의 원자력발전소 보유국이, 북쪽은 8번째 핵무기 보유 선언국이 됐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1981년 이래 소비자물가가 500% 가까이 상승했어도 전력요금은 170%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가장 가성비 좋은 전력원이 된 것은 물론 중동과 유럽에 관련 기술과 인력이 수출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기준 전력 공급의 61%를 수력이 담당하고 있다. 핵실험으로 지구촌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고 체제도 공고히 했다. 유용성과 정당성을 떠나 남북은 각기 추구해 온 바를 성취한 셈이다. 

한반도의 핵무기는 이제 폐기해야 한다. 남북은 이제 지구촌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북한은 남한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전환을 위한 호혜적 협력을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 에너지 협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 

남북한의 노력에 대해 국제 사회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 이행을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도 존중하며 화답할 것이다. 한민족 홍익(弘益)의 이념과 유대(紐帶)의 가치가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으로 다시 촉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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